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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nnun Apr 04. 2019

여행하며 홈스쿨링, 그것이 문제로다

엄마표 불량 홈스쿨링 이대로 괜찮은가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여행 초반 두 달 동안은 학교 방학기간이라 우리도 힘을 빼고 여행을 즐기는데 집중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캠핑카 생활에 적응하느라 큰아이 학습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열심히 놀고 쉬었습니다

더위가 누그러들고 삼월이 되면서 인스타그램에는 개학과 관련된 사진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고, 여행자들 채팅방에도 온라인 학습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다. 캠핑카 안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끔거렸다.


온 우주가 너의 학교라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스승이 되어 줄 거라며 자신 있게 외쳤던 나도 매일매일 아이와 함께하는 오전 공백 시간 앞에서는 평정심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발도로프 교육관을 홈스쿨링화 할 수 있을까


큰 아이는 아르헨티나에서 발도르프 학교를 다녔다. 슈타이너의 교육 철학을 따르는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일반 학교와는 조금 다른 교육실험이 펼쳐진다. 교과서도 없고 시험도 없으며 수업은 거의가 미술 음악 등 예술활동을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초등학교 일 학년에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필기체까지 모두 익혀야 하는 일반 학교 아이들과는 달리, 발도르프 학교의 아이들은 일 학년 동안 겨우 대문자를 익힌다.


담임 선생님은 알파벳 하나를 아이들에게 접근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창작해낸다. 예를 들면 알파벳 M이 주인공이 되어 산(Montaña)을 오르고 원숭이(Mono)를 만나고 같이 사과(Manzana)를 따먹고 바다(Mar)까지 여행을 한다는 M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속속 등장하는 긴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칠판에 적힌 알파벳 M을 먼저 접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두 팔과 몸 전체를 이용해 부드럽게 M을 허공에 그리면 아이들은 그 동작을 따라 하며 알파벳의 모양을 몸과 소리로 먼저 익힌다.


하나의 알파벳을 익히는데 하루 이틀 사흘이 걸린다 해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각각의 알파벳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때로는 색깔로, 촉감으로, 음성으로, 춤으로,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 세미나를 이 년간 참여했던 터라 여러 가지 활동들과 교육 방식에 대한 이해는 잘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자식을 데리고, 매일매일, 교과서도 교재도 하나 없이 도대체 어떻게 수업을 한단 말인가!


여행에서 홈스쿨링 실천은 차원이 다른 문제


물론 여행하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에게는 배움이 된다. 아마 세 달 동안 아이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익힌 것이 몇 년 동안 교과서의 지식으로 익힌 것보다 더 살아있는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있는 곳이 도시 주차장이라면? 삼일 내내 비가 와서 밖에 나갈 수가 없다면?

더하기 빼기를 배워야 한다면?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 나온다.


(실패에 가까운) 홈스쿨링 맛보기


3월 4일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아이를 식탁에 앉혔다. 아이는 노트를 펴고 십 분도 안돼서 연추동물인냥 식탁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3월 5일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미끼로 겨우 삼십 분 동안 앉히는데 성공했지만 아이는 전혀 뭘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다.


3월 6일에는 그 전날 자기 전부터 다음날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엄마 아빠는 선생님이 아니라며 뭐든 거부했고 나와 남편은 이빠이 열을 받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며 끝이 났다.


3월 7일에는 어르고 달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학으로 미끼를 물게 한 다음 나름 재미있는 과제로 삼십 분 이상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유치원 선생님같은 하이톤으로 아이를 웃기면서 한 시간을 보냈더니 내가 진이 다 빠졌다.

남편이 만든 덧셈 뺄셈 피라미드

그 후에도 아이를 데리고 덧셈, 뺄셈, 곱셈, 글쓰기 등 여러 가지 활동을 시도했는데 어떤 것들은 마지못해 하기도 하고, 엄마의 압박에 못 이겨 혹은 아이스크림이나 탄산음료에 혹해서 식탁에 앉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부 프로그램에 의지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다른 여행자 가족들을 보니 세아드(SEAD)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주관하는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에서 마련한 과제를 해결하고 이주에 한 번씩 인터넷으로 전송해야 하며 학기말에는 대사관에서 시험도 치른다고 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어떻게 보면 쉬운 홈스쿨링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탈피하고자 발도로프를 선택하고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낸 엄마로서 정부 프로그램으로 홈스쿨링을 한다는 것은 나의 선택지에는 없는 사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준비 없이 홈스쿨링이라는 과제를 당면한 것은 사실이다. 새안이 학교 담임 선생님이 여러 활동들을 보내주기로 한 메일을 기다리는 중이고, 지금은 나와 남편이 직접 창작해내는 과제들로 아이와 고군분투 중이다.


아이는 여전히 책상에 앉기보다는 수영장에 첨벙하길 좋아하고, 연필보다는 탁구채를, 공책보다는 스케이트 보드를 좋아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겠지. 단지 우리 아이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공부’를 발칙하게 거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을 뿐일지도.

당구도 좋아
승마는 더 재밌지


공부하지 말고, 같이 놀자!


새안아, 공부하자~

라고 하면 아이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온몸으로 거부한다. 그러면 나는 사탕으로, 아이스크림으로, 탁구 한판으로, 자전거 산책으로 아이와 협상하거나 달래거나 꼬시거나 때로는 협박으로 단 몇 분이라도 아이를 앉혀두기 위해 씨름을 한다.

만화로 스토리 만들기, 아들은 이런 걸 제일 좋아한다

우리의 이런 씨름의 시간을 홈스쿨링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부끄럽다. 아이에게 공부라는 단어는 여전히 지루하고 따분하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어떤 것으로 못 박혀 있을 따름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다시 시작하면 좋을까?


우선, ‘공부’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기로 했다. 그냥 엄마랑 게임하자, 그림 그리자, 자세히 찾아보자라는 말로 대체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활동으로 준비하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과제물을 만들 때는 정말 인생 최대의 창의력을 쥐어짜 내야 한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의 나이가 된 아들 녀석.

우리 아이는 어떻게 자라날까.

여느 학생들처럼 앉혀놓고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덧셈 뺄셈이나 제대로 할까.


여행하는 동안 많은 것을 체험하고 배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 지나보지 않은 시간이므로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


단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으로, 진정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알아가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

 

엄마 아빠표 불량 홈스쿨링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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