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물었다.
아이들과 하는 여행의 장점과 단점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과 아이 없이 사는 것을 비교하라는 것처럼 사실 장단점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혼자 하는 여행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그저 두 가지의 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근본부터 다른 여행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가 태어나서 두 살 정도 되었을 때, 남편이 아이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장난감이 있었다. 모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네모난 모양의 작은 벤이었다. 그 자동차는 남미의 많은 여행자들이 캠핑카로 개조해서 타고 다니는 모델이기도 한데, 만화 속 캐릭터이다 보니 눈이 그려져 있다. 바퀴 달린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그 장난감을 자주 가지고 놀았고 우리 모두는 그 눈 달린 자동차를 “눈눈”이라고 부르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와 캠핑카를 타고 다니는 여행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했고, 길에서 그 자동차 모델을 볼 때마다 아이는 눈 눈!이라고 외치며 반가워했었다.
캠핑버스를 처음으로 만났던 날이 기억난다. 800킬로미터 떨어진 꼬르도바라는 도시에 있었던 캠핑버스를 주인 부부가 우리 시댁이 있는 엔뜨레리오(entre rios)까지 몰고 왔고, 우리는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긴장하고 흥분해서 그 전날 잠도 못 자고 밤새 수다를 떨었다. 캠핑버스가 도착하던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 탓에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캠핑버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 우산과 카메라를 함께 들고 서커스를 하듯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특히나 큰 아이의 감격하는 얼굴을 찍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그런데 캠핑버스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직접 발을 들여놓는 순간까지도, 아이는 감격과 환호성은커녕 일자로 다물어진 입에 그저 진지한 눈빛으로 차근하게 육중한 버스의 자태를 살펴볼 뿐이었다.
새안아, 우리 새집이 바로 이 버스야! 멋있지? 안 좋아? 안 좋아? 기분 째지지 않아...?
아이는 감격하라고 다그치는 나를 흘끗 보더니 엄마, 일루와봐 하면서 내 손을 끌며 캠핑버스를 한 바퀴 주욱 돌기 시작했다.
엄마, 여기로 물을 채우는 거야, 이거 봐, 문을 열면 계단이 자동으로 나와, 여기 열면 라디오도 있어, 아빠가 그러는데 여기 열면 자전거랑 다 들어간대...
캠핑카 주인이 아빠에게 설명하는 걸 유심히 듣고 이미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던 아이는, 엄마 여기 봐봐, 이 호스로 똥이랑 오줌이랑 다 나온대 낄낄낄 똥오줌이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그제야 진지한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나에게 감격이라는 한 덩어리로 와 닿았던 캠핑버스를 아이는 담담함과 진지함으로 대하고 있었다. 캠핑버스가 아이에게 흥분의 대상이 아닌 연구의 대상이었듯, 여행 또한 필연적인 어떤 것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큰 아이는 놀라운 적응력과 특유의 진지함으로 여행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막둥이는 여행과 함께 걸음마를 시작했다. 바닥을 기어 다니던 아이에게 두 발로 서서 걷는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바닥에 붙어 사물을 바라보던 시야는 삼십센치, 고작 삼십센치가 높아졌을 뿐이지만 아이에게는 새 세상이 열린 것과도 같을 것이다. 흔들리는, 기울어진 캠핑버스에서 걸음마를 연마하고 있으니 균형 감각 하나는 끝내주지 않을까나?
직립보행의 기적을 경험한 아이에게 닥치는 두 번째 경이로움은 바로 말을 한다는 것이겠다. 엄마, 아빠, 형아(이야, 라고 발음한다) 다음으로 막둥이가 익힌 말은 “물”이었다. 내가 항상 한국말을 하는 탓에 물이라는 말을 먼저 할 줄 알았는데 희한하게도 스페인어인 “아구아”를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아구아, 아구아, 발음이 더 쉽나? 나는 물이 아니라 아구아를 먼저 말하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했다. 한참 동안 물과 아구아를 번갈아 발음해보며 알게 된 사실은 발음상 아구아는(아-우아로 발음한다) 입술이 거의 닿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다음 음절로 넘어간다. 물론 아 라는 모음을 이미 아빠, 마마를 통해 익혔기 때문에 훨씬 친숙할 것이다. 반면, 물이라는 단어는 입술이 단단히 붙은 상태에서 발음을 시작해 끝자락에는 혀의 위치까지 바꾸며 ㄹ발음을 덧붙여야 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며 다들 속으로 ‘물’발음을 해보고 있으리라) 조금 더 어렵게 느끼는 게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아구아-물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막둥이는 정말로 신이 나서 하루 종일 물을 외쳤다. 목이 말라서 들이키는 물이 길 위에도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이는 손가락을 있는 힘껏 뻗으며 물이라고 소리쳤다. 길 위에 쏟아진 듯 보이는 물이 하늘에서 방울방울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이 잎사귀 끝에 매달려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봤을 때, 한 방울의 물이 파도처럼 움직이는 무언가가 되어 밀려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파도를 집어먹으면 희한하게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어김없이 물!이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아이가 하나의 단어를 익히는데 필요한 경험의 양은 얼마큼일까.
컵에 담긴 물만이 물이 아니듯, 하늘이 하늘색인 것만이 아니듯, 모든 단어들이 그저 한 가지의 뜻만 지시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사실 단어 하나하나마다 수십 개의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해 배웠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큰 아이가 길을 걷다가 초라한 집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저 집에는 가난한(pobre) 사람들이 살아?라고 물었다.
남편은, 불쌍한(pobre) 사람들은 아니고, 돈이 좀 없는 사람들이겠지.라고 대답했다.
그게 그거지~ 아이가 말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불쌍한 게 아니지, 친구가 없는 사람이 진짜 불쌍한 거지, 안 그래?
아빠의 말에 아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남편이 물었다.
새안이는 돈이 많고 친구가 없는 게 낫겠어, 아니면 돈은 없지만 친구가 많은 게 낫겠어?
아이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당연히 돈이 많은 게 낫지. 애들한테 돈 주면서 친구 되자고 하면 되니까!
아직까지 친구는 놀이 상대일 뿐인 여덟 살 백이에게 돈과 친구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남편과 나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아이 스스로 알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같이 터덜터덜 걷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막막하고 먹먹한 순간들이 참 많다.
어쨌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고되지만 즐겁다. 내 자유시간을 뺏는 아이들이, 매일같이 빨랫감만 쏟아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씻기고 먹여야 하는 이 아이들이, 날이 거듭될수록 점점 더 예뻐 보인다. 고집 세고 성격이 급하다고 생각했던 첫째가 사실은 정이 많고 주변 사람을 잘 챙길 줄 안다는 것을, 24시간의 밀착 관찰이 없었다면 한동안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모험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아이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아이의 새로운 면들이 매일 발견된다.
아이들은 하얀 도화지와 같아서 부모가 어떤 그림을 그려주느냐에 따라 다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양육’에 중점을 두고 항상 일방적인 노력을 했던 내가 여행을 통해 아이들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 관찰을 하니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니 싸울 일이 줄어든다. 부모가 선택한 여행에 동참해주고 건강하게 동행해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첫째에게 선물했던 “눈눈”은 결국 우리 여행의 타이틀이 되었고 눈눈버스를 타고 우리 네 식구는 현재 브라질을 통과해 볼리비아를 앞두고 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볼리비아지만 두려운 마음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우리는 또 어떤 모험을 하며 얼마큼 성장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