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커다랗고 너그러운 학교
2년간 여행을 간다는 계획을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스레 묻는다.
"애들 학교는 어쩌고?"
학교를 가지 않으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학교는 배움의 상징이자 공부하는 곳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 구조 안에서 학교를 대체할만한 무언가를 찾기란 또한 쉽지 않다. 대안학교라는 곳도 사실은 교육 방식과 그 철학만 달리할 뿐 학교라는 기본 구조는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2년 동안 길 위에 있을 예정이다. 큰 아이는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이고, 둘째는 이제 첫돌이 되었으니 (사실 큰 걱정은 안 되지만), 하루하루의 일상을 시스템화해줄 뭔가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시스템이란 말은 어쩌면 맞지 않다. 활동의 반복, 반복되는 어떤 일과들, 이라고나 할까. 그 일과들을 굳이 학교라고 명명하자면 우리의 학교는 집이자 이동수단인 캠핑버스가 될 것이고 우리의 책상은 식탁, 운동장은 며칠마다 그 장소와 풍경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선생님?!!!
아, 이 지점에서 막힌다. 자신감이 급 하락한다. 일주일 동안 캠핑버스에서 적응기간을 가져 본 결과 아침 시간에 할 일이 무지 많았다. 아침을 먹고 치우고 곧 점심 준비를 해야 하며 물탱크를 채우거나 차 정비를 하는 등 항상 뭔가 자질구레한 일들이 생긴다. 캠핑버스 내부가 넓다고는 하지만 집과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정리를 해도 해도 어수선하다. 엄마 아빠가 정신없이 뭔가를 해결하는 동안 아이들은 특별한 활동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호기심과 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오전 시간이 변변찮게 지나가버리는 일이 자주 생긴다. 일주일 생활을 돌아보며 일과를 분석한 결과, 이동을 너무 자주 하는 바람에 하루에 물건을 정리하는데에 시간을 많이 소비했고, 아침 기상시간이 들쭉날쭉 이었다. 먹고 치우는 일에 집중을 하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책, 미술도구 같은 것들에 대한 준비가 허술했다, 등등 여러 가지 반성할 점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요리하던 엄마가 갑자기 선생님으로 돌변해서 교재를 꺼내 수업하는 분위기를 잡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즉, “수업”은 함께하는 놀이이자 경험이 되어야 함이 너무나 자명했다.
머무는 곳이 항상 달라진다는 것의 장점이 무언가. 바로 주변에 늘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겠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자연이 있을 것이며, 마을이라면 새로운 사람들과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농장이라면 생물, 과학, 수학, 농업, 요리 수많은 과목들을 배울 수 있는 교실이 되어 줄 거고, 도시라면 크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 볼 수도 있을 것이며, 하물며 고속도로 위에서라면 지도를 보면서 지리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옳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아이들과 수많은 재료들이 잘 어울려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중개자이자 아이들의 기본적인 안전을 책임지는 돌보미일 뿐인 것이다. 삼십 년 정도 먼저 태어나서 얄팍한 지식을 좀 쌓았다고 우리가 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다, 가 아닐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다. 걱정스럽고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인 학교로 아이들을 밀어 넣는 대신에 삶과 길 위로 아이들을 풀어놓으려 한다.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누군가 가르쳐주고 자극해주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입견, 얄팍한 지식, 현실감각을 가장한 따분한 인터넷 정보들이 이 아이들의 창창한 앞날을 가로막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이,
또한
온 우주가
아이들의 학교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