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앨범에는 학급의 급훈이 들어간다. 재미있는 급훈이 인터넷상에서 많이 있다. 꼬우면 네가 선생 하던가, 눈 떠, 칠판을 원빈처럼 교과서를 장동건처럼 등등. 20년 전에 졸업했던 내 졸업앨범에도 있었다. 읽기 어려운 한자로 적혀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올해 졸업앨범 제작 담당 업무를 하고 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졸업앨범 담당을 한 번 이상했으니 이번이 세 번째이다.
졸업앨범은 그냥 단순한 작업을 많이 한다. 학생들 사진 찍고, 이름도 넣고, 마무리 작업으로 급훈을 넣는다. 하지만 이 마지막 작업이 의외로 오래 걸린다. 한 문장만 넣으면 되는 건데 이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작업을 마무리해야 해서, 돌아다니며 한 분씩 의견을 들었다. 보통 급훈은 교훈적인 말이 많다. 항상 많이 듣는 ‘내일을 위해.’ ‘할 수 있어.’ 등과 같은 느낌의 문장이 많다. 이런저런 문장을 듣고, 모든 분의 의견을 거의 다 들었을 때, 평소 통찰력이 뛰어난 친한 선생님이 한마디를 했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아. 감탄이 먼저 나왔다. 그냥 다섯 글자를 들었는데 뭔가 가슴이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수 있지. 보통 다른 사람들은 칭찬, 희망 등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지 라니. 그냥 ‘괜찮아’라는 말보다 더 와 닿았다.
직업이 선생이다 보니까 상담을 많이 한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들 상담도 많이 한다. 힘든 일을 듣기도 하고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공감을 위한 경청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조언이나 어떤 경험을 말해줄 때가 많았다.
“잘할 수 있어.”
“다음에는 더 잘 될 거야.”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
이렇게 말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연 위로한 게 맞느냐는 고민을 하게 된다.
나도 힘들 때 누군가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조언을 얻고 싶어서 한 것도 있지만 그냥 내 이야기를 듣고 ‘그럴 수 있지’라고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컸던 거 같다. 괜찮아 보다는 가볍고, 빨리 잊어버리라는 의미도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의 의미도 포함된 이 말.
친한 선생님이 학급 급훈을 다른 것으로 바꿔서, 우리 반에 ‘그럴 수 있지’라는 문구를 졸업앨범에 담았다. 사실 그럴 수 있지 라는 말 뒤에는 이 말이 숨어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이 의미를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