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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Sep 22. 2021

남으면 좋은 것들

조금 늦어도 괜찮아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과학고등학교다. 과학고등학교는 생각보다 묘한 곳이다. 

 물론 학생들이 수학 과학에 좋은 학업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름(?) 영재가 모인건 당연하지만 개인 취미 생활에서도 다양한 능력을 보인다. 아이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나 선생님으로서 이런 재능이 부럽기도 하다. 


아.


 아쉽지만 물론 난 영재가 아니다. 이건 확실한 것 같다. 근데 전 과학고에 근무하는 과학 선생님이다.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게, 영재도 아닌 내가 과학고등학교에 과학교사로 일하고 있다니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에 과학고 교사로 발령을 받으니까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본 말이 있다.


"그 똑똑한 애들을 어떻게 가르쳐요?" 


"그런 영재는 남 다르겠다."


"수업 준비하려면 힘들겠다." 


 이런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처음 수업을 하기 전에 엄청 많이 긴장했다. 물론 지금은 이 말을 들으면 웃음이 조금 나온다.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 


"그냥 똑같은 아이들이에요. 근데 약간 다른 점이 있어요." 


라는 말을 하며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약간 다른 점. 제가 관찰했던 일. 상담했던 일. 과학고 근무하면서 여기저기서 들었던 일 등. 그러면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학생들 행동에 화도 나고 평범하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학생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인정해야겠다는 아름다운 주변 명언과 훌륭한 선생님들(?, 난 왜 그런 마음을 먹지 못 할까?)  마음을 먹은 다음부터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이래서 이 아이들이 다르구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중에 하나 약간 안타깝지만 나름 괜찮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 학교는 2학년 때 조기졸업이라는 제도가 있다.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물론 이 제도는 이공계 우수한 학생에게 조금 더 일찍 기회를 주려고 만든 것 같다. 


 근데 이 제도에는 약간의 아픔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선발돼서 온 집단이다. 그래서 나름 자존감도 있고 본인이 선발되었다는 기분을 가지고 지낸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전까지만. 


 조기졸업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은 한정되어있다. 졸업을 할 수 있는 학생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기준은 성적이다. 그러다 보니까 중간고사 보기 전까지 만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집단이 나뉜다. 졸업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3학년을 올라가는 학생들. 아이들은 3학년을 올라가도 괜찮다고 하지만 누구나 마음에 상처는 남아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3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특수한 학교에서 18살을 맞이하는 학생들에게는 나름 상처고 아픔이다.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걸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을 위로한다. 물론 부모도. 

 어떤 말을 하면 위로가 될까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학년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로에 대한 설명을 할  일이 생겼다. 이때 이 이야기를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때다 싶어서 이런저런 생각해보았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3년을 하면 뭐가 좋을까를 생각해봤다. 당연히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다. 2년만 보내고 대학에 간 학생과 3년을 보내고 대학을 간 학생은 사회 생활면이나 친구 관계 등 여러 면에서 좋다. 5년간 아이들을 보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일반적인 길을 걸은 아이들이 훨씬 좋다. 하지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건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뭐가 좋을까.'라는 고민을 한 참 동안 해봤다. 


 그때 농구가 생각났다. 

 나름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 농구를 배워와서 엄청 잘한다. 그래서 본인이 잘났다고 드리블만 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영재 아이들 성향이 드러나는 점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어느 정도 있다 보니까 개인 드리블이 너무 많다. 하지만 시간이 학교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다른 점이 생긴다. 그 점을 말해주고 싶었다. 




 강당 앞에 많은 학부모 앞에서 진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3학년을 진학해도 괜찮다고 말했고, 그리고 회심의 농구 이야기를 했다.  


"학기 초에 선생님 5명이 농구 팀을 먹고 각 학년 팀과 농구 대결을 합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보통 어른이어서 이길 것 같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농구도 엘리트 교육은 무시무시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당신의 아이들이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1학년한테는 절대 안 집니다. 40대의 선생님 팀들이요."


"왜 그럴까요?" 


 궁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애들이 패스를 안 해요." 


곳곳에서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본인들도 자녀의 특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3학년한테는 집니다. 3학년은 서로 패스를 합니다."



 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을 이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혼자만 드리블하며 농구를 한다. 그러다가 수비에 막히면  때 패스를 한다. 그렇게 패스를 받은 아이는 골을 넣기가 어렵다. 그러면 게임에서 진다.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또 혼자 드리블을 하면 금방 지친다. 그러면 농구가 재미없다. 그런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농구하러 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같이 한다는 게 무엇인지 배우는 것 같다. 혼자 멋있게 드리블하려고 해도 주변에 친구들이 도와줘야 잘할 수 있다는 점도 배운다. 그러면서 배우는 게 패스다. 타인을 믿고 기회를 주는 것. 타인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이 패스의 장점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의 패스'를 배운다. 난 패스를 학교에서 배우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9살이라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통해서도 배운다고 생각이 든다.


 가끔 안타까운 현실을 볼 때가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경쟁이라는 기준을 너무 일찍 제시하는 건 아닌지. 아직 아이들에게는 타인에게, 또는 자신에게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패스하는 법을 서로 알기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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