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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oJang Dec 31. 2016

히말라야, 그곳에 가다 (2)

안나푸르나의 도시 포카라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만년설 쌓인 히말라야 산맥이 꿈에 나오길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정작 공항 가는 버스를 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다시 잠자리에 누웠지만 걱정 때문인지 기대 때문인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떠보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 비행기가 뜨긴 하려나?


Ananda 가족들과 함께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아쉬운 작별을 나눈 후에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국내선 터미널은 어제 도착한 국제선 공항 터미널 옆이었는데 훨씬 더 소박했다.

포카라로 가기 위해 탄 Yeti Airline 발권 부스 - 최첨단(?) 수동 시스템, 빨간 색연필로 티켓을 써주고 손수레로 짐을 나른다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 탑승장 - 우리나라 지방 어디쯤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느낌이 난다

카트만두에도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렸지만 포카라 현지 날씨 사정이 좋지 않아 9시 40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10시 15분으로 연착, 다시 10시 30분, 11시 30분으로 지연되었다. 오늘 중으로 포카라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신 항공편 일정 화면을 쳐다보고 있으니 한 네팔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포카라 공항에서 만난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와 조카 아저씨

"From South Korea?" 

그렇게 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 옆에 앉아있던 할아버지의 조카 아저씨와 함께 간식을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조카분은 포카라에 사는데 일이 있어 카트만두에 잠시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주변에 한국에 일하러 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한국에 관해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연착된 지 2시간쯤 지났을까? 그제야 화면에 보딩 표시가 떴고 마음씨 좋은 네팔 할아버지와는 같은 항공편은 아니어서 아쉽지만 인사를 해야 했다. 포카라에 도착하면 꼭 연락하라며 손수 연락처까지 적어줬지만 사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포카라까지는 프로펠러가 달린 이 경비행기를 타고 간다

우천으로 연착되어서 목적지로 떠나지 못한 비행기들로 활주로는 무척 붐볐다. 내가 탈 비행기는 날개 양쪽에 프로펠러가 달린 조그마한 비행기였다. 포카라로 가는 동안 만년설이 쌓인 히말라야 산맥을 보려면 비행기 오른편에 앉아야 하다는 이야기에 오른쪽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활주로에 줄지어 서있던 비행기들은 차례로 각자의 목적지로 떠났고 내가 탄 비행기도 차례가 되자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이륙했다. 구름 위로 완전히 넘지 못한 채로 낮게 40여분을 날자 포카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포카라 공항에 착륙하다

포카라에 내려서 보니 구름이 많아 한낮인데도 어두웠다. 비가 온 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나를 휘감고 돌아나가자 온 몸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수레에 실려있던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와 '산촌 다람쥐'를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산촌 다람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한국에서는 오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여행 에이전시도 해주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트래킹 중 동행해줄 포터를 알아봐 주길 부탁했고, 포터와 만나기 위해 우선 그곳으로 향했다. 

2시간가량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오늘부터 트래킹은 힘들거라 생각했다. 고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서 트래킹 중에는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잔하고 느긋하게 하루 묵었다가 출발하자 마음을 먹고 '산촌 다람쥐'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숨 돌릴 새도 없이 '산촌 다람쥐' 사장님이 시간이 없다고 바로 출발하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급하게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한적한 포카라 호수가에 있는 한국 식당 '산촌 다람쥐'

안나푸르나 입구인 나야풀로 가는 택시를 부르고 근처 렌털 샵에서 침낭과 드라이 타월을 빌려온 사이에 나와 함께 해줄 포터가 도착해 있었다. 이름은 '아카스'인데 작지만 다부진 체격을 가진 친구였다. 안나푸르나 입산 허가증인 TIMS와 퍼밋도 구입하고 나니 어느 정도 출발 준비가 끝났다. 네팔에 도착하자마자 다짐했던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와는 정반대로 정신없이 후다닥 준비해서 나야풀로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를 타고 포터 아카스와 함께 나야풀로

구불구불 산길을 따로 1시간 30분 정도 달려 나야풀에 도착했다. 아카스와 나는 산행 중에 나눠질 짐을 나누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비누와 먹을 물을 구입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입구, 나야풀

아카스는 나야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시와라는 윗마을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버스는 히말라야 자락에 있는 마을들을 다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내가 타러 갔을 때는 이미 만석이었고, 더 이상 앉을자리가 없자 아카스는 앞쪽 운전석 옆에 내가 앉을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안나푸르나에는 여행객들이 그래도 제법 오는 곳이라 외국인은 익숙할 텐데 버스에 탄 승객들은 그냥 내가 신기하게 생겨서인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버스는 승객이 탄 이후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출발하였다.  

버스에 탄 주민들은 외지에서 온 여행자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가파르고 좁은 산길을 위험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버스가 계곡과 절벽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동안, 버스 안에는 네팔 대중가요(?)가 오디오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신나게 떠드는 수다 소리에 대화가 힘들 정도 시끄러웠다.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아찔한 절벽이 겁나는 건 나 혼자인 듯 보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버스는 시와에 도착했고 나와 아카스만 내려주고 버스는 다시 산비탈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아 이내 사라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아카스는 오늘의 목적지가 '규미'라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1시간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고 했다. 다소 완만한 산길을 걸어 20분쯤 걸었을까? 멀리 구름 사이로 힌출리(6441m) 봉우리가 잠깐 보였지만 이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히말라야에 와 있음을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40분을 더 걸어서 '규미'에 도착했고 어느덧 산중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나푸르나에서의 첫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규미에서 묵은 롯지, 곳곳에 주인의 정성이 들어간 정겨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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