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의 아침
이 세상 어떤 곳보다 별과 가장 가까이 다다를 수 있는 곳이었다. 히말라야는...
그리고 나와 별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다. 쾌청한 하늘에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별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비 내리는 날씨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밤새 기다렸다. 기대는 보란 듯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역시나 그 어떤 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별을 기다리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 채로 새벽녘을 맞이했다.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산중을 감싸고 있었다. 혹시나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숙소를 나서서 뒤편 언덕에 올랐다. 일출을 보지 못하더라도 이번 여행에서 원하는 것은 이미 충분히 가졌으므로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골짜기를 가득 메운 바람으로 산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무척 추웠다. 바위를 바람막이 삼아 웅크린 상태로 한참이 지났을까? 사방이 밝아 오기 시작하더니 거짓말처럼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정상에 붉은 점 하나가 맺혔다. 안나푸르나 정상은 캠프보다 서쪽에 있었으니 동쪽 지평선 너머에 떠오른 햇빛이 다른 곳보다 먼저 그곳에 와 맞닿은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나푸르나는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고, 그 빛줄기는 히말랴야 산들 곳곳을 번져 나갔다. 히말라야에 아침이 왔다.
아쉬움과 고마움, 그리고 더 없는 감동을 가진 채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
안나푸르나도 아쉬워 그랬는지... 가는 길을 험하게 하면 혹시 안 내려갈까 싶어 그랬는지... 산 아래 골짜기로부터 구름을 불러와서 이내 흐린 날씨를 만들어버렸다.
아쉬움을 남기고 하산 길에 나서자 온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무릎에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산을 오르는 내내 괜찮던 발에 물집이 잡히고, 발톱에는 죽은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운명이라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매 순간이 붙잡고 싶은 순간이었고 언젠가 다시 찾고 싶은 순간이었다. 히말라야를 다녀간 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겠지만 또 다른 여행을 통해서 남겨질 이야기에 벌써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어쩌면 여권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지금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