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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oJang Jan 14. 2017

아이에게 남겨줄 조그마한 서재

'책'이란 끈으로 아빠와 아이를 이어줄 매듭을 시작하다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까?


누구든지 그렇겠지만 저도 '아빠'라는 존재가 되고 나서야 '아빠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고민을 한다고 '어떻게'에 대한 뚜렷한 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와 나의 관계를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는 있었습니다. 아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막연하게 반복했던 생각들이 차츰 쌓여 어렴풋이 윤곽을 만들어낸 바람이 있었는데

'아이가 어른되었을 때 의미가 있는 무엇인가를 남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막연했습니다. 어떤 부모는 엄청난 부를 남겨주기도 하고, 어떤 부모는 아이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는데 난 그저 '의미 있는 무엇'이라니......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의미'와 '무엇'으로 다시 나눠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아이와 내 관계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은 아이와 함께할 시간에 늘 있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책'

읽은 책들이 조금씩 늘어나서 아이에게 남겨줄 책장을 채워갑니다

책을 남겨주자. 그리고 그 책에 아빠가 책을 읽고 든 느낌들을 남겨놓자. 아이가 커서 이 책을 봤을 때 '아빠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아이와 나 사이에 '의미 있는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름하야


'아이에게 남기는 서평' 


아빠의 손 때가 묻은 책을 1년에 20권씩 20년을 모아 400권의 책이 담긴 조그마한 서재를 남겨주기로...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지 이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1년이 지난 오늘 정리를 하려고 보니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앞으로 19년을 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멀리만 보지 않고 매년 그 해에 읽은 책을 한 번씩 정리하는 것으로 하고 매년 한 해씩만 더하는 것으로 새로이 마음을 다잡아 보려고 합니다. 16년 한 해를 돌아보니 50여 권의 책을 읽었고 그중에 아이에게 남겨줄 20여 권에 서평을 남겼더군요. 그중에 몇 개를 이 곳에 남겨놓습니다.


데미안을 읽고 남긴 서평 (16년 4월 20일)

<데미안>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거나 또는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온단다. 그리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선택하지 않을 길에 대해 아쉬움이 남을 거야. 물론, 아쉬움이 안 남는 경우도 있겠지만 만약 그런 경우라면 선택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순간이 아녔을까 싶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될까? 너의 내면, 너 자신 스스로에게 얼마나 진지하게 마주했느냐 그것의 정도의 차이가 후회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이득, 머리에 떠오른 수많은 경우의 수, 불편한에 대한 우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함, 등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

이런 이유들을 고려해서 선택을 하면 항상 후회하기 마련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들은 결국 외부환경에 나를 맞추는 것이니까. 그런 외부 환경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후회로 남고 말았다. 하지만 내면의 참모습은 네 의지만 바뀌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면에서의 울림은 이미 외부 조건들의 영향을 받아 나온 것이므로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네 내면만을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

침묵의 기술을 읽고 남긴 서평 (16년 6월 2일)

<침묵의 기술>

음악을 만드는 아름다운 선율은 한음, 한음이지만 그 '음'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이야.

말도 마찬가지다. '말'이 너를 나타내 줄 수 있지만 너를 진실된 사람으로 나타낼 줄 수 있는 것은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란다.

단지, 말을 아끼는 소극적 침묵이 아니라 너의 말을 행동을 보여주는 적극적인 침묵, 그래서 말과 말 사이를 행동으로 채워주는 모습이 그 사람의 말을 진실되게 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 아빠는 생각한다. 한울 이도 진실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남긴 서평 (16년 6월 13일)

<그리스인 조르바>

누군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한 인간으로 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아버지의 아들, 한 나라의 국민 같은 어떤 의무감으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 한울이의 자유의지로 '살아갔으면' 한다. 자유의지로 산다는 것이 그거 막 산다는 것이 아니라 네 양심의 긴준에 따라 끊임없이 세상과 부딪혀 나가는 것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이의 기준에 너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너만의 방식으로 너를 살아내는...

설령 그것이 시련으로 다가오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쉬이 '실패'라 부르지 않길 바란다. 언젠가 네가 이 책을 보고 너만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면 아버지한테 술 한잔 청해주지 않을래? 밤늦게까지 조르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네 인생에도 누군가가 조르바로 다가오거나 네가 누군가에게 조르바가 되어주길 바라며...

미크로메가스를 읽고 남긴 서평 (16년 7월 13일)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책을 읽고 어떤 지식을 알게 되는 것보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해

단순히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은 지식이 늘어날수록 쓰이고자 하고 밖으로 드러나려는 경향이 강해서 오만해지기가 쉽단다. 그래서 지식의 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생각의 깊이야. 생각이 깊어질수록 쌓인 생각들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깊어진 생각만큼 지식을 쓰임에도 그 정도를 가려 행할 수 있게 되지

'네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닌 그 무엇에 대한 너의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그런 의미에서 볼테르는 두고두고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책인 것 같다.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고 남긴 서평 (16년 10월 5일)

<역사를 위한 변명>

사람들이 끊임없이 역사의 교훈을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 속에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것들과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것들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야.

각자가 가지는 생각들은 서로 다르겠지만 역사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기준이 된단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기술을 업으로 하는 역사학자가 갖는 의미는 크지.

아버지가 사는 지금 사회적으로 많은 논쟁이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도 그 의미를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 바꿔보면 우리가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가를 바로 알 수가 있는 것 같다. 훗날 우리에게 같은 일이 반복되었을 때 어떤 창으로 바라볼 것이냐?

친일을 미화하는 역사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리 나라를 저버릴 것이고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를 배운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독재를 하려 할 것이야.

일본에 대한 과거사 문제도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 인류에게 저지른 참혹한 전쟁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 가져야 할 역사의 관점이고 그것이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아버지가 얻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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