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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오브라이언 Feb 08. 2022

대학교육을 퀀텀점프시키겠다고?

일상에서의 단상

무릇 교육, 특히 대학의 교육은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금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물질만능주의, 금전만능주의가 대학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에서 소위 '퀀텀 점프(Quantum Jump)'라는 게 가능할까? 혹자는 가능하다고 강변할 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은 돈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다고, 지금부터 돈을 투자하면 그만큼 발전하고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과연 그럴까?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들은 교육에도 훨씬 더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소득수준의 격차만큼 우리와 교육격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과거 1960-70-80년대의 교육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학교시설이나 교육기자재 같은 교육환경은 분명 좋아졌지만, 교육여건이나 교육 자체는 더 나빠지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 그럴까? 돈이 결국 교육의 본질인 인성교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순자가 주장했던 것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익을 좇고, 눈과 귀와 입에 좋은 것을 찾는 성향이 있어서 돈이 많아지면 양심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학문'을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결론적으로 교육에 있어서 '퀀텀점프'는 불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물이 끓기 위해서는 100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열을 가해야 하는 것처럼, 벼를 수확하려면 볍씨를 뿌려 모를 만들고 모를 심어 두어 달 동안 햇빛과 바람과 물을 머금어야 하듯, 교육도 그런 일련의 과정 없이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온실 속에서 기름보일러로 만들어낸 과일은 온전한 영양소를 가진 과일이 될 수 없고, 가축공장에서 인공사료를 먹여 속성으로 키운 소는 명품 한우가 될 수 없듯이 교육은 장인의 정신으로 혼을 담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행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인격체를 양산하는 인력공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특히나 대학교육에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천민자본주의의 소산일 뿐이다. 


교육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재단할 수 없는 가장 신성해야 하는 인간 활동의 정수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공자는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진정한 대학교육에는 돈과 실력 있는 소인배들이 아니라 철학이 있고 비전이 있는 군자, 즉 순자가 기다리던 '성인'이 필요하다. 


작금의 우리에게 공맹이나 페스탈로찌 같은 진정한 스승이 없음이 아쉬워 푸념 같은 단상을 늘어놓는다...



20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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