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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an 02. 2023

2022년, 얻은 것과 잃은 것

잃기만 하는건 없는 법이지

당신은 올해 계획이 뭐야?
나? 나 그런 거 정하고 살아본 적 없는데?
저축 목표액 그런 거는 좀 정해봤지만.
그래. 내 아내답다.


우리 부부의 연말 마지막 대화는 저거였다. 그랬다. 계획을 세우고 사는 인생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데로 갔다. 그 말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것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2년. 유난히 정신없었던 한 해였다. 2020년 12월 복직을 해 2021년 여름 팀을 옮겼다. 2021년 12월 암수술을 했고, 제9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22년 한 해는 그 모든 일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한해였던 것 같다.



손가락 마디가 시리게 글을 썼고 내 이름이 걸린 책을 얻었다.

짬날 때마다 글을 썼다. 점심시간 1시간 바짝 달려 외고를 쓰고 책을 위한 보강 원고를 작성했다. 1시간을 바짝 달려쓰면 그래도 A4 1페이지는 족히 써낼 수 있었다. 그걸 아니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한 줄이라도 빠르게 써내고 잊고 싶었다. 주말에 원고를 쓸 시간은 많지 않았다. 매일 1시간 점심시간에 달리면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안다. 그럼 주주에 달리는 거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을 들여 책을 위한 원고를 만들어냈고 짬짬이 외고 알바도 해냈다. 그래도 한 16 꼭지 정도는 써냈던 것 같다. 임신했을 때 아프던 손가락 마디가 다시 아파졌다.


독박육아로 손발이 묶였지만 우리 가족은 다른 종류의 평화를 얻었다.

외고와 책 작업이 끝나고 나니 약간의 허무가 밀려왔다. 그사이 부동산 경기는 꺾였고 내 책 역시 세상의 관심밖으로 밀려나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쓰레기를 남긴 건 아닌가 하는 반성과 중압감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허무는 놀라운 강도로 쌓여있는 회사 일과 동시에 물려 돌아가던 남편의 해외 출장 덕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허무를 느끼고 기억할 겨를 도 없이 체력을 갈아 넣어야 했다. 1주일 출장, 돌아와 한 주 쉬고 다시 2주 출장. 하필 제일 바쁠 시즌에 도는 출장으로 나는 야근을 전혀 할 수 없는 일정이 되었고 일은 켜켜이 쌓였다. 움직이면 움직일 때마다 돈이 된다. 그리고 돈과 상관없이 지난 2년간 손발이 꽁꽁 묶여 있던 남편에게 출장은 물리적인 피곤함과 정서적인 충만함이 공존하는 일정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게 그가 에너지를 다시 채우기를 바랐다.


팀이 바뀌고 처음으로 단독사업을 진행했고, 혹독하게 배우고 있다.

복직 후 정신 차릴만하니 팀을 옮기게 되었고, 팀을 옮기고 온전히 사업을 혼자 다 끌고 가는 첫해가 2022년이었다. 사업계획에서 정산까지, 매일매일이 시행착오였다. 그래서 정신이 없었다. 반년은 해봤으니 잘 아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반년은 반년일 뿐 일이 내 몸에 전혀 익지 않아서 1년 내내 좌충우돌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관 계열에서 통용되는 문서작업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개조식의 보고용 문서 사이사이에 깔린 작은 틈새에는 책을 만들 때보다 더 섬세한 규칙이 있는데 그걸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시행착오로 돌아왔다. 여기에 야근이 불가능해지니 상황은 좀 더 심각해졌다.


마디가 시리게 키보드를 두드린 결과 새 차가 생겼다.

새 차를 샀다. 21년 마지막주 새 차를 계약하고 인도까지 1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차 값의 절반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고 정확하게 그 돈을 모았다. 물론 암수술 보험금과 브런치북 상금이 큰 몫을 했지만 말이다. 책 안세, 외고 원고료, 상여금 등등 부가적인 모든 수입은 차를 위한 돈으로 모였다. 그렇게 우리는 새 차를 받았고 허리를 숙이지 않고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는 신세계가 열렸다. 이런 줄 알았으면 진즉 SUV로 갈아탔어야 했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심지어 이제는 아이가 혼자 차를 타고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제 이 차로 한 10년 타고나면 아이가 훅 커있을 테니 그때는 다시 세단으로 갈아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동산과 주식은 아스러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버틸만하다.

그 와중에 집값은 무너지고 있고, 주식도 제법 손실이 났다. 집은 어차피 살아야 하는 것이니 어쩌고 말게 없고 주식도 그냥 두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그래도 금리 2.3%대 2억 중반의 대출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고, 주식은 우리 인생을 침범하지 않는 문자 그대로 여유자금으로 진행시킨 거였다. 지난 5년간의 수익을 고스란히 토해내 많이 속상한데 뭐 어쩔 것인가. 그냥 묻어두기로 한 것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을 밖에.


엄마가 힘이 들거나 말거나 아이는 쑥쑥 자랐고 고민도 많아졌다.

아무튼 그사이 나의 이런 고단함과 무관하게 아이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쑥쑥 커있었다. 비 온 뒤 대나무처럼 놀라울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재정상태는 저 아이의 성장과 변화를 받아 안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자문하게 되었다. 체험 하나가 쌓이면 아이는 체험이 주는 장점과 단점을 빠르게 흡수하고 성장한다. 몸의 성장이든 말의 성장이든 아이의 성장은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의 수준이었다. 나는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좀 하긴 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미래는 집이 해결해 준다면 아이의 미래는 무엇이 책임져줄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올해는 그게 뭐든 해답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뎌야 한다.


'나'를 잃어버린 1년이었고 '가족'이 중요해진 1년이었다.

이메일과 인스타그램을 쭉 훑어보니. 나의 1년에 내가 없었다. '내'가 없는 삶은 그동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삶이기도 했다. 1년에 수십 편을 보던 공연과 전시 관람도 저 멀리가 있고 아이를 배재하면 내가 없었다. 책을 만들었고 그걸 교보문고에 대문짝만 하게 걸었던 순간이 위기감을 그나마 축소시키는 것이기는 했지만 경계하고 또 경계했던 그 삶의 한가운데에 내가 들어와 있었다. 그 와중에 둘쨰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정신을 차려야 할 타이밍이다.


2023년의 목표는 그럼 '나'를 위한 시간과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하겠다. 사실 경제적인 부분만 고려한다면 나의 다음 목표는 남편을 위한 사무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크기와 위치를 갖추려면 3억은 족히 든다. 경매를 공부해야 할 때가 왔다. 경매를 한다고 해도 아무튼 계약금 정도의 돈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돈을 모아야 하고 지출을 통제해야 하는데 나는 다이어터 입 터지듯 지갑이 터져서 미친 듯이 사재끼고 있고 아직도 사고 싶은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러기 위해 집을 비우고 공간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은 머릿속에 있지만 넋을 놨다. 너무 오래 누르고 통제하니 반작용으로 튀어나오는 상태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다시 침착과 정상을 찾는 날이 오겠지. 쇼핑은 그동안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주던 힐링 포인트였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이 누르고 살긴 했다. 예전처럼 흥청망청 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할 타이밍인 건 맞다. 그래도 운동화는 사야지.


나를 위한 시간. 가족을 위한 돈.


이 2가지를 위해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조금은 더 세밀하게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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