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휴직은 과연 온전히 가능할 것인가.
임신 기간 내내 아이에게 위험 요소가 있을 수 있다고 느껴지는 이벤트는 없었던 나름 순탄한 임신 기간을 보내는 중이다. 나에게 임신 기간 중 손에 꼽는 고민 중 하나는 바로 휴직기간이었다.
출산 3개월이냐. 출산 + 육휴 12개월이냐, 출산 + 육휴 15개월이냐.
이 3가지 옵션 사이에서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했다.
엑셀을 켜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두들겨 넣었다. 아이에게 들어갈 비용은 아이 앞으로 나오는 수당으로 지출하고, 집 대출금은 육아휴직 처리를 하면 원금은 미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도 관리비와 각종 공과금, 건강보험, 태아보험 등의 비용을 생각하면 한 달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나간다. 대출 이자는 이자대로 계속 나가야 하니 그도 합하면 기백만원이다.
그 상황에서 휴직은 경제적인 타격이 너무 큰 의사결정이었다. 그나마 출산휴가 3달은 회사 측의 배려로 금액 변동 없이 기존 수입을 그대로 보전할 수 있지만(원래 규정상엔 2개월이지만 우리 회사는 3개월까지 기존 페이를 챙겨준다) 그 기간이 지나면 수입은 일단 반토막이 나고, 그마저도 수당의 일부는 복직해야 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3토막이 나는 거나 다름이 없다. 또 3개월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1/3만 들어오는 순간이 온다.
프리랜서인 큰고영은 특히 상반기가 한가하다. 그 말은 상반기 수입이 매우 적다는 뜻. 고정적인 비용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 엑셀을 두드리고 또 두르려서, 연말정산에 얼마가 나올지 모를 상여까지 계산해서 대출이자만 한 1년 치를 감당할 수 있다면 그래도 수당으로 먹고는 살 수 있겠다... 가 나의 결론이었다.
돈만 생각하면 3개월 만에 복직해야 맞았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큰고영 혼자 독박 육아를 하게 된다. 보통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의 정 반대 상황이 생기는 거다.
그레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안다. 체력소모가 클 거고, 아이에게 시달리다 보면 우울증도 올 수 있고, 그러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시부모가 개입할 수 도 있다. 6개월 만에 어린이집을 단 1시간이라도 보낼 수만 있다면 보내고 싶지만 그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게 현실., 프리랜서 경력에 큰 타격이 온다. 여자들이 겪는 경력단절. 그걸 큰고영이 겪게 된다는 뜻이다. 자존감이 박살 날 거고, 부부 사이에 균열이 오기 쉽다. 여자들의 경력단절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자존감 하락을 겪게 될 거라는 뜻이니까.
다 떠나서. 나도 싫은 경력단절을 큰고영이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우야 간 어딘가에 적을 두고 있지만 큰고영은 자기가 움직이는 만큼 돈 버는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하든지 말든지, 돈을 얼마를 벌든지 말든지 그건 이 세상에서 중용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정규직의 나라이다. 이미 결혼과 대출, 이사의 과정에서 본인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뼈저리게 겪은 터. 경력단절까지 온다면 가계경제는 물론이고 정신건강에도 매우 좋지 않다.
나는 휴직을 통한 금전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께 신생아기를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
손실의 규모는 작지 않다.
실질 인금이 1/3 토막이 나고, 각종 수당도 사라진다. 상여는 당연히 없고. 그로 인해 대출 원금 상환을 미루면 결과적으로 이자지출이 늘어난다. 그게 거의 천만 원 돈이다. 계산하고 나면 사실 난 9개월치 월급을 고스란히 날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발상은 나의 휴직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는 나의 경제상황과 큰고영의 경제상황, 그리고 그로 인한 자존감의 하락을 막는 최선의 선택이 1년의 휴직임을 꺠닳았다.
엑셀에 몇 번의 번복이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비용의 변수는 계속 나타났다. 재산세도 내야 하고 겨울이 되면 난방비도 늘어난다. 입 하나가 늘고 내가 점심시간에 집에 있는 만큼 식비도 늘어날 거다. 차마 식비까지는 계산에 넣지도 못했다.
아이가 먹어만 준다면 경제적인 이유로라도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각종 육아용품도 시시 때 때로 사게 될 거고. 아무리 중고장터를 전전하다 해도 한계는 분명하다.
고민의 결론은 그래도 휴직이었다.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200만 원가량의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하지만 그 말은 큰고영이 현재 지불하고 있는 각종 식비들과 자동차 관련 비용을 제외한 오롯이 내가 감당하는 마이너스가 그 정도라는 뜻이다.
큰고영은 "그래도 그 정도 금액이면 어찌어찌 버티지 않을까? 아이가 자라는 못을 보지 못하면 자기가 너무 속상할 거 같아"라고 말했다.
나의 낭만은 아이의 성장보다는 엑셀에 있는 모양이다. 그걸 만끽할 자유는 나에게 없어 보였다. 몇 달간 고심의 결과를 회사에 전했고. 1년 계약직을 뽑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일을 대체할 사람이 뽑혔고, 나는 그에게 일을 하나씩 전수하기 시작했다. 2주간의 인수인계 기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휴직에 들어가고. 휴직 개시일과 예정일 사이에는 고작 10일의 기간만 남을 정도로 미친 듯이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그나마 인수인계가 2주라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출근 한지 4일 만에 이분이 퇴사를 선언하셨다. 예전에 면접 본 다른 곳에서 뒤늦게 연락이 온 것이다. 불합격 통보까지 준 회사였건만 그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 아침 일찍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다. 어디 가서 손 부끄럽지 말라고 명함 파준 지 24시간도 안됐는데 말이다.
그 선택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본인의 인생이거늘. 하지만 나는 순간 배가 쨍하게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 젠장 망했다. 37주 4일. 임신기간 최대의 태클이다.
산달이 한 달도 안 남았다는 나를 두고 다들 얼마나 놀래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버티는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작은 조직의 특성상, 다른 직원이 내 업무를 대체할 수 도 없다. 당장 10일 앞으로 다가온 회사의 큰 행사는 어찌어찌 치르겠지만 그사이 사람은 또 어찌어찌 뽑겠지만 내가 직접 인수인계를 못할 상황이 될 각이다.
짜증이 났지만.
화도 났지만.
어쩌겠는가.
나와 내 아가의 팔자다.
전후 사정을 가볍게 듣고. 인사를 마치고 총총히 떠난 사람을 기억할 여유가 나에겐 없다. 난 또 열심히 일을 만들어내야 하고. 또 버텨야 한다.
병원 검진에서 애가 빨리나 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2일째. 이미 자궁이 좀 열렸고 아이는 많이 내려왔다. 수축의 빈도가 심상치 없다며 내진을 했고 나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많이 내려와 있음을. 해외로 출장 간 큰고영이 돌아오는 게 언제냐며 3번이나 묻는 선생님을 보면서 당장 다음 주에 애가 나와도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청소하고, 버릴 물건을 버리고. 책상을 비우고. 외장하드를 주문했다. 데이터를 옮기고 나면 물리적인 준비는 끝. 이런저런 연락망만 정리하고 나면 사실 어찌어찌 굴러는 갈 거다. 후임자만 온다면 말이다. 최악의 경우 후임자를 집에 불러서라도 인수인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며 멍떄리고 있다.
정말 나한테 왜 그러니 싶다. 이렇게 까지 다이나믹하게 출산할 일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