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꼬미 방 빼는 날
월요일에 출근한 후임 예정자는 목요일에 퇴사를 통보했고 나는 금요일에 회사로부터 1년 휴직 대신 3개월 휴직을 권유받았다.
휴직을 얼마나 하냐를 논하기 이전에 당장 예정일이 20일도 체 안 남은 순간까지 버티며 일하고 있던 나에게 모든 계획을 다 흔드는 제안이었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몇 달을 두들기고 또 두들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휴직을 하기로 한 나의 결정을 당장 내일 애가 나와도 이상할 거 없는 시기에 뒤집어엎을 수 있냐는 질문은 나 같은 성격의 사람에게 그 자체만으로 힘든 질문이었다.
혼자 결정할 수 없고 큰고영과 상의해야 한다고 대답하고는 세상 심란해져서 자리로 돌아왔고 그날의 업무를 마쳤다.
송별회 겸 회식까지 마치고 집에 들어가 고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큰고영과 해후하고 오늘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나의 휴직만을 기다리던 큰고영에게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나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의 질이 높아지는 큰고영에게는 청천벽력이었으리라. 하나는 무거운 몸에 격무로, 또 하나는 긴 출장으로 피곤에 절어 대화도 길게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토요일 예약해둔 마사지를 받고 집에 와서 다시 늘어졌다. 1주일 격무의 피로는 금요일 하루로 다 풀리는 게 아니었다. 어지럼증이 시달리던 나는 토요일도 일요일도 정신 못 차리고 늘어져야 했다.
그렇게 주말을 알차게 쉰 우리는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는 그 순간에도 아가는 신나게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너무 큰 발길질에 아파서 대구르르 구르고 있던 차였다.
갑자기 뱃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물 같은 것이 쏟아졌다.
양수가 터진 거였다. 이게 소변이면 나는 이 나이에 소변도 못 가리는 꼴이니 말이 안 되는 거고 말이다. 소변도 아닌 것이 물처럼 흘렀다.
젠장. 아직 예정일까지 2주가 남았고 난 인수인계를 할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업무분장도 못했는데 48시간 이내에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밤 11시에 터진 양수. 병원에 연락하니 한두 시간 경과를 지켜보자고 한다. 양수인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이게 양수가 아니면 방광에 문제가 있는 거다. 1시간이 지났고 미리 준비해둔 산모용 패드 3개가 흥건해졌다. 병원에 다시 전화를 했고 입원 준비를 해서 병원에 들어오라고 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하얗게 질린 큰고영을 진정시키는 일이었다. 제왕절개를 유일한 옵션으로 두고 있었던 나는 지난 진료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진통이 오는 상황을 준비해야 함을 예상했다.
분만의 일반적인 과정을 미리 약간 찾아보고 마음의 준비를 시작한 나와 달리 큰고영은 그저 갑작스러울 뿐이었다. 애는 내가 낳는데 눈앞에서 종종 종종 문자 그대로 난리가 났다.
12시. 캐리어를 한번 더 체크하고 타다를 불렀다. 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한다고 시간을 지체하는 게 더 일일 거 같았다.
침대에 누워 내진을 하고 큰고영은 입원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 당장 이 꼭두새벽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닌 바에야 수술은 안 한다 하니 그저 아침 9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자궁수축을 기록하는 기계에는 그다지 큰 수치가 잡히지 않았다. 물론 나도 제왕절개를 할 생각이었지만 뭔가 진행이 빠르다면 자연분만도 고민해볼 만 한데 새벽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꼬박 9시간을 아파 끙끙거렸는데 이게 웬걸. 9시간 동안 자궁문에는 1cm도 변화가 없었다. 이상태로는 무통주사도 못 놓는다 했다. 유도에 촉진제 쓰고 30시간 용쓰다가 결국 제왕으로 넘어간 수많은 사례가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스트레스로 아이는 더 이상 버틸 의지가 없음을 선언해버린 셈인데, 아이는 아직 내려올 준비가 안 돼있는 그 상태.
양수 터지기 직전까지 발길질을 하도 해대서 갈비뼈가 아팠는데 갑자기 양수가 터져서 이게 무슨 노릇인가 했는데....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뻗어버린 거였다. 주수만 채우고 나오라고 그렇게 빌고 또 빌었건만...
나는 담당 선생님이 올 때까지 버티다가 선생님께 물었다.
“솔직히. 얼마나 걸릴 거 같으세요?”
제왕절개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골반이 너무 좋다며 욕심내던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밤새 진행이 좀 됐으면 모르겠는데... 이 상태면 저녁까지는 갈 거 같은데요. 자연분만은 진통도 진통이지만 마지막에 힘줄 때 산모의 의지가 매우 중요해요. 그게 진짜 힘들거든요. 근데 의지가 없으시면 그냥 수술하세요”
예. 의지 없는 산모는 바로 결정합니다
“수술 언제 할 수 있나요?”
“10시 반 정도에 들어갈게요”
“으아아아악 그럼 최대한 빨리라도 해주세요”
그랬다. 난 의지가 없다.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난 이미 진통을 9시간째 하고 있었다. 졸다 깨다 하는 진통이었을지언정 진통은 진통이다.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버틸 생각이 정말 1도 없었다.
그렇게 복잡스러운 오만 동의성 등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사인하고 바빠 죽겠는데 진통 강도가 높아진다. 아아아아아 미쳐버리겠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었다. 근 10일을 해외 출장 후에 금요일 밤에 도착한 큰고영. 주말이 지나가고 첫 평일 아침 9시였다. 아내가 애 낳으러 왔다는데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큰고영의 전화가 문제였다.
“보호자분 어디 가셨어요?”
저 소리만 9번은 들은 거 같다. 밖에 없어요? 통화하러 갔는데... 다른 산모들에게 방해될까 봐 아예 분만실 밖에 나가 있는 통에 들어오기도 복잡하고 계속 들락거리는 통에 나도 뚜껑이 열리기 일보 직전. 심지어 회사에 나 수술하러 왔다 소리도 5분은 통화한 거 같다. 젠장. 보 다보다 다 싫어진 나는
“지금부터 오는 모든 전화와 카톡은 다 무시해. 설명도 하지 말고. 그냥 나만 봐”
수술실은 들은 대로 너무나도 추웠고. 턱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하반신 마취는 처음인데 너무나도 무서워서 수면마취 빨리 해달라고 하고 나가떨어졌는데 눈뜨니 눈 앞에 아가가 보였다.
“아가는 괜찮아요?”
라고 내뱉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났다.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풀리기 전까지 오한으로 덜덜 덜덜 떨다가 병실로 옮겨 오만가지 주사 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누웠다.
그렇다. 나는 이제 진짜 엄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배는 불러있어도 ‘무자녀’에 체크해야 했던 시간 37주를 지나 이제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