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엄마를 만드는 방식

육아는 혼자할 수 없다

by 김옥진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고개도 들지 못하는 무서운 시간을 보내고 나의 첫 미션은 침대에서 벗어나 혼자 서는 것이었다.


제왕절개의 가장 큰 미션은 바로 그거였다. 일어나는 것. 후기에서 본것처럼 내장이 쏟아지는 느낌을 견디고 두발을 땅에 딛고 일어서야 했고, 화장실에 가야했고 가스를 배출해야 했다. 그것이 회복을 첫 단계였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온몸에 주렁주렁 수액과 주사약을 달고 복도를 걸어다니는 일.


잠결에 봤던 내 아가를 보러 신생아실에 가려면 일어나서 걸어야 했다. 수술 중에 깨워서 보여준 아가의 존재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이게 본능이라는 건가. 나도모르게 눈물이 났던 기억도 났다. 그래. 날 눈물나게 했던 아가를 보러 가야지.


병실을 배회하다 복도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회복이 너무 느릴꺼라며 내 등를 떠민 엄마덕분이었는지 수술 직전 얼결에 신청한 페인부스터와 무통주사의 힘이었는지 우려했던것보다는 참을만 한 고통이었다. 물론 화장실 가서 온몸에 힘주는건 무서웠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가를 보러가 또 물색없이 울어버린 나의 낭만은 딱 유리벽 너머 첫 대면까지였다. 모유수유가 시작되면서 현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술후 3일차 였나. 수유콜에 신생아실 옆 수유실로 내려갔다. 고작 2.8kg에 태어난 아가를 품에 안고 정신 없는 수유 교육을 받았다. 아가는 작고 또 너무 작아서 만지면 부서질거 같아 무서운데 수유실 선생님들은 거침이 없었다. 행동이 그랬다기 보다는 말이 그랬다. 카리스마 넘치게 젖물리는 법, 아이를 안는 방법, 깨우는 방법 등을 훅 던지고 자세를 체크해주더니 신생아실로 들어갔다.


난 말이 워낙 빠른 사람이라 왠만한 속도에는 굴하지 않는데... 와... 신생아실의 바쁜 분위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내용을 쏟아내고 들어가셨다. 산모도 계속 오고 저 문 너머에 앙앙 울어대는 아가들이 수십명이다. 여기 엄청 정신 없고 바쁘구나 싶었다.


아이를 안은 산모, 그러니까 초산인 산모는 아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는 것도 하지 못한다.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나도 그랬다. 그럼 버튼을 누르고 알람을 들은 신생아실 선생님이 나온다. 아이 방향을 바꿔주시고 다시 들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수유는 출산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동반한다. 유축 텀을 놓치고 잠이들었다가 진정 지옥을 맛보았다. 눈을 떴는데 가슴에 돌덩이 2개가 얹어져있었고 욱신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왜 유축을 하지 않았냐며 “양배추 사오셨어요?” 라는 말을 대충 5번은 들었나보다. 그걸 가슴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나? 차트에 써놨나? 모든 선생님이 수유갈때마다 물어보더라.


보호자인 큰고영은 하필 일때문에 어딜 가있었고 고작 양배추 때문에 들어오라고 하기 민망한 상황이었다. 아직도 양배추를 안샀냐며 거의 6시간이 지나서야 그 망할놈의 양배추를 사들고 갔는데 심지어 이 종이 아니란다. 왜 유축을 안했으며, 니 가슴을 다시 멀쩡하게 해줄 양배추는 어디있냐며...


왜는 없었다. 그냥 가져오면 설명해준다고 했다. 결론은 가슴을 차갑게 해서 열기를 빼주는게 목적이었는데,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그런 용도의 냉찜질팩 정도은 시판용으로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그까짓 양배추. 비위생적이어 보이기까지하는 양배추에 목숨걸거면 병원에서 좀 구비해주지... 병원에서 해주는 말이라고는


“이거 가슴 마사지 받으면 좋긴 한데, 조리원 가죠? 그럼 거기서 해줘요”


어떻게 하는건지 알려주길 바랬지만 병원안에 있는 유료 마사지와 조리원의 몫으로 넘겨버렸다. 그마저도 딱부러지게 “유료이지만 받으셔야 해요. 받고 오새요”도 아니고 두루뭉실...


입원 기간 내내 단단히 뭉쳐 쉬이 풀리지 않았던 가슴은 조리원에서의 폭풍수유로 해결됬다. 결국 모유를 제때 빼주지 않으면 그게 몸에 부담이 되는 거였다. 울혈(?)이 완전히 해소 되기 전 나는 이미 온라인을 뒤져 가슴용 찜질팩을 주문해두었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얹어주면 흐물흐물 물기가 남은 양배추보다 더 편했다.


난 임신에만 무지한게 아니었다. 출산 그 이후에 있는 내 몸의 변화에도 무지했다. 병원은 치료를 위한 기관이고, 친절보다는 안전이 최우선인 곳이다. 아가를 위해서는 신새벽 수유콜은 기본 이다.


새벽 3시에 콜받고 일어나서 좀비처럼 수유실로 불려가 수유하고 돌아오면 다시 바이탈 체크와 수액 교체를 위해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보호자도 나도 푹 잘 수 없는 시간이 1주일 내내 이어진다.


멍때리고 수유 콜을 해결하고 침대에 앉았는데 문득, 어느 누구도 나에게 수유를 어떻게 하겠냐고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출산전까지 나의 수유계획은 유축을 해서 우유병에 넣어 먹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병원에 와서 아이를 낳고 나서는 그냥 병원의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라가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수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서의 시간이 다 지나가고 드디어 퇴원날이 다가왔다. 퇴원일이 전날 진행된 퇴원 교육. 엄마만 오라고 하는 말에 순진하게 정말 혼자 내려갔다. 가보니 다른 집은 아빠도 와있더라. 당장 큰고영을 불러왔다.


누구보다도 가장 손이 많이 필요한 신생아 시기. 혼자 감당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당연히 모든 교육은 같이 받아야 했다.


퇴원 당일에 진행된 아가 컨디션 체크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만 들어오란다. 수유때처럼 내가 뭘 특별히 해야하는 줄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단순히 아이에 대한 설명을 듣는 과정이었는데 그 모든

순간은 엄마의 몫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체 보낸 1주일동안 나는 엄마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왜 수유가 중요하고, 유축의 과정과 직접 수유의 차이가 무엇이고 장단점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은채 수유가 진행되었다. 아이가 젖을 직접 무는 것이 유축기보다 젖량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뒤늦게 유투브를 보며 알 수 있었다.


직접수유처럼 절대적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케어하는 행위는 충분히 함께할 수 있는데 최소한 병원에서 만큼은 엄마만을 양육자로 보고 있었다 근데 다른 곳이라고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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