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그게. 왜. 궁금하니.
임신하고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아들이야 딸이야?
이다. 이 질문의 예의 없는 버전은
애는 뭐야?
였다. 뭐냐니... 애가 물건이냐. 세상에. 무례의 끝이다.
우야 간. 산달이 가까워지며 하나 더 붙은 질문은
자연분만할 거야? 제왕절개 할 거야?
이다. 난 나의 출산 방식을 왜 굳이 묻는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양반이다. 제왕절개를 하겠다고 의사를 밝히면 출산 유경험자건 아니건 10명 중 7명은
그래도 자연분만해야지
라고 대답한다. 대한민국의 오지랖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남의 부른 배를 보며 결론이 아닌 과정까지 세세히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이유를 들은 들 거기에 자기 의견을 보탤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왜냐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심플하다. 어차피 인생 90 넘어까지 살 거고, 그 와중에 짧게는 2주, 혹 길면 1년에 걸친 시간은 길지 않으니 후유증을 감수하더라도 예측 가능한 상태로 분만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6시간이 될지 10시간이 될지, 30시간이 될지 모를 분만 시간과 분만으로 인한 요실금이나 치질 같은 부수적인 증상들을 안고 가고 싶지 않다. 후유증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평생 안고 갈 증상을 만드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하면서도 짜증 나는 건, 일단 자연분만이라는 말 자체가 불편하고, 내가 왜 이걸 설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자연분만은 흔히 질을 통해 아기가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런 방식의 분만만이 자연의 섭리이고 옳다는 뉘앙스가 불편했다.
이젠 자궁을 포궁이라고, 자연분만을 질식분만이라고 한다고 하지만 아직 내 주위에서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없다.
자연분만이 자연의 섭리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의 삶의 방법은 나 스스로 정하고, 그것은 분만과 출산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싶다.
자연주의 분만이건, 수중분만인 건, 질식분만이건 간에 말이다. 다른 분만의 방식에 비해 제왕절개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마도 여성이 직접 통증을 감당하지 않아서겠지. 진통이라는 엄청난 과정을 스킵한 분만은 진정한 분만이 아니라고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심지어 그렇게 태어난 첫 인물이 로마를 지배한 카이사르였다 해도 말이다.
자연스럽지 않다.
그게 이유일 것이다. 임신의 과정 내내 제일 힘든 건 물리적인 통증이나 피곤함이 아니라 40년 동안 존재했던 한 인간이 깡그리 사라지고 누군가의 “모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가 돼버리는 거였다.
나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임신은 그런 나의 성향에 완전히 위배되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모든 의사결정의 중심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들어와 있고, 그런 의사결정의 과정과 결과를 너무나도 쉽게 보는 한국 문화에 질리고 말았다.
시댁? 내가 질식분만이 아닌 방식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쏟아질 질책과 밑도 끝도 없는 원망이 있을 거라는 것도 안다.
왜. 늘. 그 순간에 ‘나’는 지워버리는가
이제 9개월쯤 되면 적응할 만도 한데, 난 그게
참 쉽지 않다.
내가 애를 어떻게 낳든 제발 더 이상 묻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이제 정말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