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고통없이 아이를 얻은 자의 낭만을 나에게 대입하지 말라고
27주로 접어들며 매우 결정적인 문제가 생겼다.
골반이 아프다. 겁나 아프다. 젠장. 잠자는 자세가 바뀌면서 생긴 문제 같은데. 정형외과에서는 7개월이라고 하니 아예 접수도 안 받는다.
내가 추정하는 문제의 시작은 26주 차부터다. 반듯하게 누워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너무 우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와 아이를 둘러싼 기관들의 무게를 내 허리가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몇 달 쓰자고 바디필로우 사긴 아깝고 마침 집에 긴 쿠션도 있고 해서 그걸 바디필로우 삼아 한쪽 끝은 다리에 끼고 또 한쪽 끝은 배 아래에 받치고 옆으로 누워 자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골반이 뻐근하고 어깨가 뽀사진다. 어깨는 베개를 높이는 것으로 해결하고 작은 쿠션 하나를 더 가져와 배에 대고, 긴 쿠션을 반으로 접어 다리사이에 끼고 옆으로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옆으로 누워 자기 시작한 지 1주일이나 됐을까. 오른쪽 골반이 엄청 아프기 시작했는데 더 문제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자는 방향을 바꿀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너무 쨍하게 아파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나마 자고 일어나면 평지를 걷는 건 어찌어찌 하겠는데, 의자에 앉거나 일어날 때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에 오늘 쪽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다는 것. 힘주면 100% 비명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3일을 버티다 드디어 정형외과에 갔는데.... 7개월이라 했더니 접수대에 간호사가 나와하는 말이
아픈 부위가 골반이시면... 아기집이랑 가까워서 X레이를 찍을 수도 없고
약도 못쓰고, 전기 치료를 할 수도 없어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유일한 치료는 온찜질이에요. 그건 집에서 하셔도 되고요.
지금 말씀하신 통증엔 걸어 다니는 게 제일 나빠요
사실 큰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다못해 자는 자세에 대해 상담을 해본다거나, 마사지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간 건데 의사 얼굴도 못 보고 돌아 나와야 했다. 접수대의 다른 간호사 분이 뭔가 통증 완화 관련 크림을 언급하는 거 같았지만, 나에게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해준 간호사분이 잘라 말했다.
“흡수돼서 아기집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그 모든 순간에 내 몸보다 아기가 우선인 삶에 난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건 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의 배려고, 스스로를 위한 보호장치였다. 그래도 의사분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접수대에서 날 돌려보낼 줄은 몰랐달까... 골반이 아프다고 하면 산부인과에서 할 말은 뻔하다. 원래 다 그러세요...
그래서 골반 통증에 집중할 수 있는 정형외과에 간 건데, 의사 면담 자체도 불가능했다. 아이가 크면서 신경을 누르거나 하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뭘 어쩔 수 없는 건 알았지만 정말 허무하더라.
난 몸이 아프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거나, 네이버의 선배 엄마들의 경험담으로 나의 상황을 추정하고 스스로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그게 의사의 소견이 아니라는 사실이 매우 불안하지만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 왜? 난 아프고 임산부가 받을 수 있는 처치에는 매우 한계가 많으니까.
다녀와서 유튜브를 뒤지며 골반을 열어주는 스트레칭이나 임신 중에 할 수 있는 골반 교정 요가와 스트레칭을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핫팩은 순간의 통증만 완화시켜줄 뿐, 양수가 너무 뜨거워질까봐 오래 대고 있지도 못한다.
집에 와서 고안한 나의 방법은 안 아픈 쪽으로 옆으로 눕되, 등 뒤에 작고 단단한 베개를 더 대어 자세를 바꿀 때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천천히 기대어 바꾸는 것과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덜 아프게 일어나고 눞는 방법을 찾은 것 정도. 하필 큰고영도 해외출장이고 혼자 덩그러니 남아 비명으로 집을 채우는 꼴이라니... 그래도 큰고영이 출장에서 돌아온 후에는 앉고 설 때마다 팔을 내주어 기댈 수 있어 좀 나아졌다.
그렇게 토요일 하루를 비명과 함께 보내고 있는데, 부모님이 김치와 과일을 가져다 주신다고 오셨다. 엄마가 벨을 누르는데 빨리 일어날 수가 없어서 천천히 움직이는데 내가 못 들은 줄 알고 문을 쾅쾅 두드리셨다.
물건을 집안에 들이고 나가시는데 문을 닫는 그 틈 사이로 내가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는걸 엄마가 보신 모양. 애가 얼마나 아플까 싶어서 그렇게 눈물이 나셨다고 하시는 그 와중에...
아빠가 하시는 한마디에 뚜껑이 열렸다.
난 임신한 여자들이 한 8개월쯤 되면 얼굴이 그렇게 편안해 보이더라
너도 곧 평온해질꺼란 말... 아. 아재요... 아버지요... 어찌하면 당신 딸이 나이 마흔에 아이를 가졌고 이제 7개월 막바지에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 딸을 앞에 앉혀두고 모성애를 기반으로 한 정신적 평온함을 논하는가... .
난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괴로운데... 혹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커서 내가 휴직하기로 통보한 날보다 아이가 빨리 나오면 어쩌나, 이 아픈 골반을 끼고 남은 두 달 반을 어찌 출근하나, 버스에 타고 내리는 그 단순한 동작들만으로 충분히 고통받을 그 수많은 시간들이 너무나도 끔찍한데...
엄마가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할 거라는 저 막연한 생각, 몸의 변화와 삶의 변화는 안중에 없는 낭만적인 태도를 걸음걸음 비명으로 버티고 있는 딸 앞에서 아무런 여과 없이 보이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아빠는 보고싶은데로 보는거였다 . 마치 남처럼.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근데 딸이 힘들어하면 날 걱정하는 게 먼저여야지... 넌 그래도 행복하게될꺼야 참아... 라는 말이 어떨게 튀어나올수 있지? 눈앞에서 우리딸 힘들어 어쩌냐고 눈물을 훔치는 엄마 앞에서... 아 그렇게 보이던지 말던지 내가 아프다잖아. 내가 아파서 일어날때마다 비명이 나오다잖아. 근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엄마의 임신기간에 아빠가 어땠을지 너무나도 알겠다. 엄마가 임신해서였나 아이를 나은 직후였나, 엄마가 만두를 먹고 싶다고 했단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는 친구들과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12시가 다돼서야 들어오면서 불은 켜져 있지만 출입문 셔터는 내려가 있는 만두집 문을 부서질 듯 차서 만두를 사 왔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하곤 했었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어쩔 수 없으니 만두 좀 파시라고 해서 사 왔다고. 애초에 술을 안 마시고 일찍 왔으면 그런 상 민폐를 안 끼쳐도 됐고 엄마는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고 만두를 먹을 수 있었다.
당신의 기억 속에 그 모든 게 뿌듯함이고 자랑이고 낭만이었겠지. 부른 배를 붙잡고 집안일을 하며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엄마는 안중에 없었다, 요즘에야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청소기가 있지. 무릎 꿇고 방 닦던 시절이다. 엄마의 삶이 너무나도 보이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아빠의 그 쓸데없이 낭만적인 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개월 차에 이미 한번 내 속을 뒤집었고, 그게 왜 8개월이어야 하는지 따질 새도 없이 당신 딸은 아니라고,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 힘드니 그런 시답지 않은 소리 하지 마시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아빠는 이미 잊었다... 원래 임신은 그런것이고...
아빠에게 당신 딸의 고통은 태어날 손주가 주는 즐거움 뒤에 있는 것이다
어려서 아빠밖에 모르고 살았고 아빠도 딸바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내게 그런 아빠의 말은 큰 충격이었다. 보고싶은 데로 보는건 남들이나 그러는 줄알았는데, 시부도 아니고 친부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줄이야. 그 어떤 순간에도 내 걱정을 할 줄 알았던 아빠도 그저 앉은 자리에서 아무 고통 없이 예쁜 아가를 만날 설렘만 남은 남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말았다.
아무리 곤히 잠들어도 내가 조금만 큰소리를 내면 후다닥 일어나 내 몸을 살피는, 통증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 수없어 너무나 속상하다고 말하는 큰고 영이 새삼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다른 여자들이 다 겪은 평범한 그 일에 무슨 유난이냐는 말을 좀 많이 예민하다고 돌려 말하는 아빠. 정말이지 마주하기 힘들다... 난 그저 시간이 빨리 가기를 너무나도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