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달을 준비할 때

걸음걸음 어렵다.

by 김옥진


집에서 사무실 출퇴근이 딱 30분 거리다. 버스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도어 투 도어 30분. 걸음이 느려진 요즘의 속도를 감안하면 40분 정도 소요되는, 출퇴근 시간으로는 매우 나이스한 거리. 도어 투 도어 1시간이 안 되는 건 서울살이에서 축복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난관은 있으니 바로 버스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는 대략 10분이 걸리는데, 이 버스 코스가 좀 지랄 맞다. 버스를 타면 곧장 올림픽대로로 올라가서 여의도로 진입하는데, 올림픽대로로 진입하고 얼마 안돼 다시 여의도로 진입할 때의 그 코스가 매우 꼬불꼬불해서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 채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된다.


임신 초반엔 텐션이 바짝 들어간 상태에서 버티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픽 쓰러지는 상황이 생겨서 결국 택시 출퇴근을 선택하게 되었더랬다. 중기에 들어서서는 아무래도 양보하시는 분도 많고, 또 그게 아니어도 웬만큼 버틸만해서 버스 타고 잘 다녔는데 8개월 차가 되니 내 몸이 내 맘대로 안된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도 헉헉거린 적이 두어 번 있어서 좀 무서웠는데, 출근길에 그 미주 기립성 실신 어쩌고 하는 증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버스에서 내려서 잠시 앉으면 없어졌던 초기와 다르게, 숨차고 정신 혼미한 상황이 꽤 오래간다는 거였다.


평소보다 5분쯤 늦게 사무실에 도착할 거 같던 그날이 딱 그랬다. 지각하긴 싫어서 씩씩거리며 이동하고 있는데, 이미 버스에서도 증상이 남달랐고 버스를 내려 바로 사무실이니 괜찮을 줄 알고 열심히 걸었는데 사무실 도착하고도 20분이 넘도록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다.


하필. 월요일이었고, 나름 행사 비슷한 것이 있어서 내가 일어나서 보스가 주는 무언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는데 나는 얼굴과 입술이 하얘져서 의자에 쓰러져있다시피 했고, 그걸 설명할 수도 일어날 수도 없는 컨디션이 되었다.


놀랜 팀장이 헐래 벌떡 뛰어와 "이 친구 오늘 상태가 매우 안 좋다"며 감싸 안았고, 나는 그러고도 한 10여분을 더 멍떄리고 있어야 했다. 엄밀히는 정신은 있는데 몸을 움직이기 너무 힘든 그런 상태였달까?


나는 예전에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증상으로 좀 놀래버렸다. 막달은 워낙 뭐든 변수가 많은 달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8 개월차부터 올 줄은 몰랐다. 비슷한 증상이 연이어 오는 걸 느끼고. 다시 택시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택시를 부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주 한주 몸의 컨디션이 바뀔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온 회사 사람들이 다 보는 와중에 혼을 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막달이 돼서 달라진 건 그뿐만이 아니다.


몸에 열이... 너무 난다....


타고나길 냉한 몸이라 인생에 땀과 열에 예민해본 역사가 없는데 열이 나도 나도 너무 난다. 요즘처럼 에어컨을 틀다 말다 하는 시즌에 매우 취약하다. 아침엔 싸늘하니 재킷을 입어야 하는데 걸치면 덥고 벗으면 추운 우울한 상태.


거기에 애가 확 커져서 인지.... 가슴팍 아래쪽이 결리기 시작했다. 태동도 아랫배 쪽에서만 움직이던 아이가 이제 전신을 다 쓰는지 가슴팍 아래쪽에도 제법 센 태동이 오기 시작했는데. 급기야 이번 주 들어서는 갈비뼈 위쪽이 결려....


아가야... 엄마를 왜 이리 힘들게 하니... 네가 건강한 건 반갑다만 평소보다 훨씬 쉽게 숨차고 빨리 땀나고 빨리 지친단다...


몸에 열이 많아지면 몸이 편안해야 하는데 손목이며 발목이며 관절도 영 뻐근해진다. 파라핀 베스 따위를 사고 싶어 지는 이 마음을 어찌하면 좋으냐 말이다....


이제 슬슬 출산 가방도 정리해야 하고 애 태어나기 전에 미리 사야 할 소소한 물품들도 마무리해야 한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다가오고. 몸은 힘들다. 그래도.


머리가 커도 좋으니 주수는 꽉 채워 나오너라.


빌고 또 빌어본다. 시간이 참 이상하게 흘러간다. 더디다 싶으면 훅 가고. 빠르다 싶으면 느리다. 사진에 집착하던 나는 이상하게 만삭 사진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몸으로, 이 배로 사진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 돈에 그저 고기 사 먹고 신나게 노는 게 남는 거지... 의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의 제왕절개 수술 영상을 보았다. 내가 이제껏 본 중에 가장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얇은 막 같은 것에 감싸진 아이가 미끄러지듯 스윽 나왔고 터트린 건지 터진 건지 막이 터지고 아이를 감싸던 물이 흘러내려 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난 아이의 모습보다 더 시선이 가는 건 산모의 몸이었다. 인간의 배가 그렇게 길게 찢어진걸 내 살면서 볼일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 내 몸이.. 저렇게... 되는 거구나.... 나도 모르게 멍 때리고 본 그 영상에 심장이 어찌나 뛰던지. 그래도 저렇게 나오면 아이가 스트레스는 덜 받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인간의 몸을 스스로 뚫고 나오는 그 힘을... 아이가 견디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 아닌가. 그 작은 구멍이 아가의 머리가 나올 정도로 커지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아이도 혼자 힘으로 암흑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올 거다. 우야 간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의 네이버 검색창엔 온갖 육아템이 난무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물건이라면 아낌없이 산다는 이들의 말이 무엇인지 한 번에 이해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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