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by ocasam

아낙네들은 철 따라 산과 들로 나가 거칠어진 손끝이 초록으로 물들 때까지 나물을 캔다.

달래, 냉이, 씀바귀, 질경이, 쑥, 돌나물, 머위, 미나리, 꽃다지, 고비나물, 취나물

가죽나물, 다래순, 고사리, 민들레, 엉겅퀴, 참나물 원추리, 비름나물, 명아주, 고들빼기.......


불룩해진 자루를 머리에 이고 집에 돌아오는 길

허기진 배는 등에 붙고 비쩍 마른 다리는 휘청거린다.

나물에 쌀을 두어 주먹 넣고 물을 부어 나물죽을 끓인다.

어린 자식들이 제비새끼처럼 배고프다고 짹짹거리면

어미는 보리밭에 쭈그려 앉아 풀을 맨다.

그런다고 보리가 빨리 익을 리 없건마는 어미의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지천에 깔린 게 나물이지만 곡기가 부족한 뱃속은 늘 허전하다.

나물이나 꽃의 향기를 아무리 맡아도 여전히 배는 고프다.


'꽃길만 걸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사람들은 철 따라 꽃 따라 시간을 들여 몰려다닌다.

벌과 나비보다 사람들이 더 많은 꽃 축제

매화, 산수유, 튤립, 유채, 벚꽃, 동백, 철쭉, 진달래, 수선화, 장미, 무궁화연꽃

해바라기, 수국, 백합, 라벤더, 야생화, 상사화, 백일홍, 국화, 코스모스, 메밀꽃, 억새꽃.......


사람들은 늘 배가 부르고 살이 찐다.

살 빼는 약을 먹고 지방 제거 수술을 한다.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자식들도 없다.

옛 시절의 향수와 봄의 향기가 그리워 고기보다 비싼 나물을 사는데 기꺼이 돈을 쓴다.

세프들의 우아한 음식도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인구 약 82억 명

굶주림에 시달리는 인구 약 8억 명

4358년, 대부분 배고프고 가난했던 우리의 역사

먹고 살만 하게 된 것은 40여 년 전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진정으로 배가 부른 것까요?"

"배는 부르지만 마음의 보릿고개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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