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될 운명에 처한 공중 전화기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습니다.
"지가 먼저 얘기해도 될까유?"
"그리 하이소."
"맘대로 허시쇼이"
"그러시죠."
"지가 살아온 얘기를 하자며는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유. 좋은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마는 지나고 나니께 구박당하며 서럽게 산 일들이 더 생각나네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슈. 아 어떤 젊은 남자가 전화를 하다가 승질을 부리며 전화를 딱 끊어버리더라구유. 그러더니 전화통을 때려부수려고 하는지 손목아지를 박살내려고 하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전화통을 주먹으로 여러번 내려치더라구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리며 전화부스를 발로 마구 차며 생 지랄을 하더라니께유. 엄청 안 좋은 일이 있었내비더라구유. 충청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다가 순하고 인정이 많기로 정평이 나있잖유. 그래서 그 남자의 행동이 당최 이해가 안됐쥬. 공중전화 부스 옆에 쭈그려 앉아 질질 짜는 것을 보니께 마음이 짠해지더라구요. 아 술냄새도 확 풍기더란 얘기는 빼먹을뻔했네유. 맨정신으로는 못하니께 술김에 용기를 내어 스트레스를 풀어 보았을 수도 있겠네유. 아이구 저 인간도 사는 것이 참 고달픈게비다 생각을 하니께 이해가 확 되긴 했슈."
"아이고 말도 마이소. 내도 산전수전 다 겪었어예. 사람들이 동전을 넣고 통화를 한다 아임니꺼. 통화가 끊긴 시점에서 돈이 남으면 잔돈이 거스름 통에 쨍그렁 하고 떨어져야 할낀데 안 떨어질 때가 종종 있어예.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화기를 잡고 몇 번 힘을 줘 아래로 댕겨보고 잔 돈이 안 나오면 그냥 궁시렁거리며 자리를 뜹니더. 그런데 성질 드러분 사람들 있다 아입니꺼. 그 사람들은 절대로 그냥 떠나는 법이 없어예. 일단 철판으로 된 전화통을 깨부수려는듯 주먹으로 세게 내려칩니더. 지 기분좋자고 하는 것인지 나 들으라고 하는 것지 쌍욕까지 한다아입니꺼. 자리를 뜰 때도 그냥 곱게 안 가고 전화부스에 발길질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고 떠납니더. 내 입장에서는 마치 나한테 화풀이 한다고밖에 생각이 안들었지예. 갱상도 사람들은 대부분 성질이 억수로 급합디다. 그래도 내가 고마 이해하고 좋게 한 마디 해 준다면 '화끈하다'고 말해줄 수는 있겠네예. 아 그라고 동전 몇 개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으니 그 점은 칭찬받아야 할 것 같네예."
"다들 고생이 많아부렀네요이. 나는 쪼까 서글픈 야그를 해야겄어라. 이슬비 추적추적 내리는 깊어가는 가을 밤이었어라. 한 청년이 전화통을 붙잡고 동전을 많이 쓰더만요. 겁나게 오랬동안 누군가에게 애원을 허고 애걸복걸 헙디다요. 긍께 내가 짐작허기로는 애인에게 만나달라고 마지막으로 사정을 허며 어르고 달래는 작업을 허고 있었던 셈이지라. 오메 어짜야쓰까나! 불쌍허기 짝이 없드만요. 그 청년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져 전화선 너머의 그 여인이 허벌나게 얄미워지더랑께요. 결국 준비해온 동전과 함께 그 청년의 희망도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말았고만이라. 청년은 땅이 꺼질듯 무거운 한숨을 쉬고 차갑고 어두운 가을빗속으로 떠나버렸지라. 월매나 실망을 혔는지 손에 힘이 빠져 수화기를 제 자리에 걸쳐 놓지 못허는바람에 밤새도록 전화통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수난을 겪어야 했어라. 사랑과 이별의 아픔이 한 사람의 영혼을 요로코롬 송두리째 흔들어 놓다니, 그깐 사랑이 머다고 이라고 속을 끓여야 허는가? 철학적인 생각을 허며 허옇게 밤을 지새던 그 날이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당께요."
"저라고 뭐 다를게 있겠어요? 사람 사는 세상은 거기서 거긴것 같아요. 그래도 10원짜리, 5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 넣어가며 별의별 사연들이 우리를 통해서 오고가던 그 시절이 참 좋았던것 같아요. 요즘 세상엔 손전화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 공중전화를 쓰는 사람들이 잘 없어요. 아, 있다 범죄. 보이스피싱, 마약 그런거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고 우리를 이용하지요. 비 오는 날 우리동네에 자기 집 옆 전화부스에 와서 담배를 피는 영감탱이도 있네요.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수화기를 늘어뜨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그 시절이 그리워네요. 왠지 가슴이 허전한 날들이 늘어만가요. 할 일 없이 국고만 축내고 있는것 같아 자책감도 들고요. 그 때는 사람 사는 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