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들기름 서너 숟갈 넣고 들들들 볶은 신김치는
보리 섞인 밥도 꿀맛같았다.
돌틈에서 뜯어온 돌나물과 쫑쫑 썬 미나리를 섞어 담근 물김치를
국 삼아서 떠먹으면 거친 밥도 술술 넘어갔다.
여름
사나흘 정도 익힌 열무김치를 양푼에 넣고 밥과 고추장을 섞어 싹싹 비벼 먹으면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잘 익은 열무 물김치를 국수 위에 얹어 후루룩 몇 번 하다 보면 마음까지 든든했다.
어린 열무를 한 움큼 쥐고 우지끈 잘라 밥 위에 얹고
짭짤하고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 한 두 숟갈 넣고 슥슥 비벼서 아가리가 터져라 먹다 보면
저녁은 안 먹어도 될 성싶었다.
가을
쫙쫙 찢은 김장김치 한 가닥을 뜨거운 밥 위에 척 얹어 먹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했다.
쌉싸름한 갓김치와 매워도 손이 가는 쪽파김치
꽉꽉 깨물어 먹는 깍두기와 앞니로 툭 잘라 어금니로 오독오독 씹어먹는 총각김치
삼시 세끼 먹다 보면 가느다란 팔다리에 살이 올랐다.
겨울
아침이면 큰 가마솥에서 빨간 김치와 송송 썬 두부가 하얀 김을 내며 펄펄 끓었다.
들기름을 조금 넣으면 고기를 넣은 듯 빨갛고 동글동글한 기름방울들이 둥둥 떠다녔다.
눈보라 속 들판길을 걸어 학교 가는 길도 속이 든든해 춥지 않았다.
엄마의 김칫국은 힘을 주었고 살맛 나게 했다.
밤이면 고구마와 함께 먹는 살얼음 둥둥 띄운 동치미가 있었다.
목이 메면 국물 한 모금을 마시고 무를 베어 먹는다.
오장육부까지 서늘해지면서 세상 부러울 게 없어졌다.
별짓을 다 해서 끓여도 엄마의 김칫국 맛이 아니고
하얀 쌀밥과 넘쳐나는 고개 생선도 어릴적 적 그 맛이 안 난다.
이제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던 형제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아홉 식구들이 북적거리던 그 시절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