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선물

by ocasam

쪽파 잎을 사오센티미터 길이로 잘라 피리를 분다.

처음에는 피---하고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그 소리'가 아니기에

제대로 된 소리가 날 때까지 불다 보면 드디어 삐---하고 튼튼하고 찰진 소리가 난다

온 힘을 쓰다 보니 혈압이 올라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언덕에 올라 풀 속에서 삘기를 뽑아 입에 넣는다

잘근잘근 씹다보면 기분 좋은 단 물이 입 안에 퍼질 즈음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간다


연분홍 진달래가 여기저기 꽃등불을 켠다

꽃 한 송이를 살포시 입에 넣고 앞니로 가볍게 씹으면 시큼하고 달짝지근한 게 별미 중 별미다


지천으로 꽃이 피면 친구와 꽃싸움을 한다

암술을 십자 모양으로 엇갈리게 한 다음 잡아당기면 둘 중 한 개가 끊어진다

소소하지만 쏠쏠한 승자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도 닦는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게 민들레홀씨 대궁이 한 개를 꺾는다

입 안 가득 공기를 들이마신 다음 등과 배가 붙고 두 볼이 서로 닿을 정도로 입술에 힘을 주어 훅하고 분다

하얀 불꽃이 팡 터지면서 공중으로 흩어진다

홀씨를 따라가던 내 마음은 어느새 먼 하늘가 흰구름에 닿는다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

물속에 오래 있어 입술이 파래지고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때쯤

약속이나 한 듯 재미난 소꿉놀이가 시작된다

모래는 밥이 되고 짓이겨 으깬 풀에 물을 부으면 국이 된다

자갈밭에서 찾은 사기그릇 조각에 담아 놓으면 소박한 한상차림이 뚝딱 만들어진다


아카시아 잎을 손으로 쫙 훑어내고 줄기로 머리카락을 칭칭 감는다

구름처럼 잔뜩 부푼 기대감을 안고 한참을 기다렸다 풀어보면

친구가 멋진 파마머리 아가씨로 변신한다

방바닥엔 빠진 머리카락들이 한 움큼 널려 있지만 재미에 비하면 뭐 그리 대수랴


밭 가장자리에 빙 둘러 심은 옥수수에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아이들은 인형놀이를 한다

머리를 한 갈래나 두 갈래로 땋거나 묶으면 어린 소녀가 되고

돌돌돌 말아 올림머리를 하면 아줌마가 된다

머리를 풀어헤쳐 귀신을 만들고 온갖 무서운 이야기들을 지어내면 더위는 저만치 도망을 간다


내 어린 시절을 빛나게 했던 자연이 준 공짜 선물

학교에 다녀온 뒤부터는 시간을 잴 일이 없다

어쩌면 오후의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추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질리도록 놀다가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집에 돌아가면 그뿐


내게는 고향이 만들어준 한 권의 그림책이 있다

그 속에는 누구나 저녁때 돌아갈 작은 집과

외롭고 힘들 때 서로를 위로해 줄 사람들이 있고

시간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는 푸르고 빛나는 시간들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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