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없는 맹세

by ocasam

어버이날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님께 손 편지를 쓴다.

기념일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써오고 있는 사랑의 편지다.


열에 아홉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문구가 있다.

"엄마 아빠, 저를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다음에 커서 돈 많이 벌면 좋은 집과 맛있는 것 많이 사드릴게요."

"앞으로는 지금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엄마 아빠의 착한 딸이 될게요. 사랑해요."


어버이날 주고받는 사랑의 편지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감동과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서로에게 못해준 것, 미안했던 것을 떠올리는 순간 감동은 두 배가 된다.


안타깝게도 이 애틋한 감동과 행복은 유통 기간이 매우 짧다.

하루 이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왜 그렇게 엄마 말을 안 듣고 속을 섞이니?"

"엄마, 제발 나를 좀 믿어 주면 안 돼? 내가 알아서 할게. 나 좀 내벼려 두면 안 돼?"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원에 실려 가면 수술실 앞에서 가족들은 모두 기도를 한다.

"하느님, 부처님, 성모님, 제발 우리 **를 살려주세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게요.

내 목숨이라도 내놓으라면 내놓을 테니 우리 **를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신다면 새 사람이 될게요."


다행스럽게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죽음이라는 강력한 방부제 때문일까?

이 감사함의 유통기간은 좀 긴 편이지만 결국 이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토록 절절한 맹세는 실없는 맹세가 되고말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맹세를 왜 안 지키냐고 누구 한 사람 묻거나 따지지 않는다.


가족의 굴레 안에서는 실없는 맹세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맹세가 된다.

지지고 볶고 싸우며 에너지를 키워내고 서로의 지친 날개에 힘을 실어 주는

가족이라는 베이스캠프 속에는 이토록 놀라운 치유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베이스캠프들이 오랫동안 견고하게 지속되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개취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