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차림

by ocasam

가난했던 시절 먹고 싶었던 희망의 대표 단어

순수, 정갈, 쫀쫀, 끈끈, 대동단결의 대명사

좔좔 흐르는 윤기와 폴폴 피어오르던 김 때문에 너무도 우아하고 오만하기까지한

그래서 배를 더 허기지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릇 속에서 벗어나면 하찮은 밥풀떼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고매한 교훈까지 주는 하얀 쌀밥


물과 재료가 만나 어우러져 술렁술렁 자유롭게 떠다니며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며 허한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던 깊고 진한 국물


안에 뭐가 들었건 묻고 따지지 않아도 무조건 믿고 먹는 어머니의 맛난 된장찌개


맵고 짜고 아린 것들을 사심 없이 받아들여 옷자락에 켜켜이 품어 만든,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는 김치


물과 바람과 땅이 키워내 철따라 입맛을 돋우어 주는 나물들


꼬치에 공평하게 나란히 꿰여 환상적인 색깔의 콜라보로 보기만 해도 침 꼴깍 넘기게 만드는 산적


안에 있는 것을 속 시원하게 다 드러내며 고소한 기름냄새로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부침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모든 재료들이 엉키고 설키며 조화로움을 자아내는 잡채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소금에 절여지는 고통을 감내한 작품으로 입맛 잡는 장아찌


이것 저것 남아 있는 재료들을 한 장의 김 안에 다 집어 넣어 만든 김밥처럼

이런 저런 근심과 걱정들도 다 몰아 넣고 돌돌 말아 처분해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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