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개인정보는 어디까지
어느 날 채용 사이트에 공개해둔 나의 이력서를 보고 한 회사의 인사담당자가 면접 의사를 묻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30명 남짓의 중소 기업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있는 앱을 꽤 오랫동안 운영해온 곳이었다. 어느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기업같아서 면접 제안을 수락했다. 인사담당자는 면접을 보기 전 원격 과제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서비스 기획자 채용 과정에 과제 수행이 포함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포트폴리오까지 제출한 마당에 구직자 입장에서 번거로운 절차이긴 하지만 유별난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만 이 회사의 경우 제시한 과제가 테스트용이라고 보기에는 실제 업무에 가깝다는 인상이 강했고 제법 시간이 걸릴만한 내용이었다. 내가 작성한 화면 설계안만 해도 열 장 남짓.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추가적인 문서 작성까지 하게 되면서 적지 않은 분량의 산출물이 나왔다. 이전에 일했던 사업 분야와 달라서 이런저런 고충도 있었지만, 어쨌든 과제를 완성해서 제출했다.
며칠 뒤 합격 연락이 왔다. 현장에서 과제 면접을 한 번 더 진행할 예정이라는 안내를 들었다. 회사를 직접 방문해서 과제 내용을 전달받았고 제한 시간은 네 시간이 주어졌다. 현재 앱이 가지고 있는 특정 문제점에 대한 개선안을 기획 문서 형태로 정리하라는 과제였다. 한 회사에서 과제를 두 번 보는 경우는 처음이었고, 이후로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중간에 그냥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지원자에게 테스트용으로 요구하는 과제의 수행 강도치고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이상 온 시간이 아까워서 끝까지 마무리했다.
과제를 제출하고 이를 간단하게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뒤 바로 이어질 대표 면접을 위해 대기하게 되었다. 그 때 인사 담당자가 인사기록카드를 한 장 건네주면서 기다리는 동안 작성해달라고 했다. 그는 원래 회사에서 진행하는 절차라고 덧붙였다. 인사기록카드에 적어야할 내용들을 훑어보면서 갸웃했다.
‘이런 건 입사 후에 쓰는 거 아닌가?’
기본적인 인적 사항과 경력 사항 외에도 가족 관계 여부와 부모님 직업을 적는 칸이 있었다. 아직 채용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세세한 개인 정보를 적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도하고 의아했다. 인사팀에서 면접자에게 이런 정보를 필요로하는 이유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나 혹시 내부적으로 채용 확정인건가?' 하는 착각도 잠깐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적어야 하는 건가요?”
라고 한번 더 물어봤을 법도 하다. 하지만 면접을 앞둔 입장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일은 쉽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러 회사에 가는 순간, 아무래도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될까 봐, 괜히 문제를 만드는 지원자로 보일까 봐. 결국 나는 인사 기록 카드를 모두 작성했다. 나중에서야 부모님 직업같은 자세한 개인정보는 비워도 되는지 물어볼 걸,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다.
면접을 기다리면서 약간 가시가 돋아있던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인사 담당자가 와서 대표님의 일정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 같다면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건물을 나오니 날이 어둑해지고있었고 배가 고파왔다.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최종 합격 전에 인사기록카드를 적게 하는 경우가 있는지, 여러 면접 후기들을 검색해봤던 기억이 난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회사에서도 최종 합격을 하지는 못했다. 불합격 연락을 받은 뒤 인사 담당자에게 나의 인사기록카드는 파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과제를 두 번이나 수행하고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도 달갑지는 않았지만,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그 어느 곳보다 잘 알고 있을 IT 회사에서 입사도 하지 않은 면접자에게 부모님 직업란이 포함된 인사기록카드를 작성하게 했다는 점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나의 결혼 여부가 궁금한데 직접 물어볼 수 없어서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더욱 이상하다. 그런 질문이라면 조심스럽게 에둘러서 물어보는 쪽이 훨씬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데. 그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기업의 입장을 웬만한 면접자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 찜찜한 의문에 대한 답은 끝내 알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면접자의 부모님 직업은 왜 그 시점에 알아야 했을까. 기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