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언젠가는 그러나 아직은.
나도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새 관찰(birding)을 좋아한다. 새를 볼 수 있는 모든 곳에 행복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세상의 시름이 사라진다. 그저 땅을 쪼는 행위에도 기특함과 행복이 스민다. 그런 면에서 뉴질랜드는 행복의 땅이다. 셀 수 없는 아름다운 새들을 창을 열기만 해도 마주할 수 있다.
어느 월요일, 매주 메일로 발행되는 연구소 뉴스 광고란에 ‘펭귄 모니터링 팀을 모집합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나는 이 광고를 보자마자 운명처럼 느껴졌다. 당장에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저요! 저요!!’
그렇게 선착순 8명으로 구성된 펭귄 모니터링팀이 완성됐다. 펭귄팀의 역할은 주 1회 돌아가면서 연구원 옆 펭귄 서식지에서 펭귄을 모니터링하는 거였다. 우리가 관찰하는 펭귄은 ‘Blue Penguin’이라는 종으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이다 (키가 약 35-43 cm 정도 된다). 얼마나 귀여운지 세상 사람들에게 늘 자랑하고 싶은 걸 참는다. 펭귄 팀에 합류한 한동안은 핸드폰에 펭귄 사진을 저장하고는 점심을 먹을 때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다. 우리 팀 직원들은 내가 무슨 펭귄 전문가나 되는 냥 펭귄에 대한 질문이 생기면 나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나는 그냥 좋아할 뿐 가진 지식은 그들과 진배없었다.
우리 연구소 서식지에는 13개의 나무로 만든 둥지가 있다. 바다와 연결된 작은 터널을 통해 펭귄들은 둥지로 들어온다. 매주 화요일 펭귄 팀은 2개 조가 되어 번갈아 가며 13개의 둥지에 펭귄이 있는지 확인하고, 펭귄이 있다면 그들을 기록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어(gear)로 펭귄의 목덜미에 가져다 대면 펭귄에 내장된 칩을 일련번호로 읽는다. 칩에는 그들이 태어난 곳, 나이, 성별 등의 정보가 보관되어 있다. 기어에 나타난 일련번호와 그들의 상태를 앱에 기록하면 자동적으로 Urban wildlife Trust* 로 전송이 된다. 가끔 그들의 똥을 채집하기도 하는데, 이는 최근에 뭘 먹고 다니는지, 건강상태는 어떤 지 등을 알기 위함이다.
‘혹시 오늘 똥 봤어?’ 하고 묻는 것이 일상 인사 중 하나다.
블루펭귄은 9-10월 정도부터 서서히 서식지에 들어와 알을 낳기 시작한다. 알을 낳고 나면 두 부부가 번갈아 가며 그 알을 품는다. 한 마리는 음식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들어온다. 철저한 분업이다. 지난해에는 음식을 구하기 위해 나갔던 한 마리가 사고로 죽고 남은 한 마리가 홀로 알을 품다가 끝내는 떠났다. 그 알은 결국 부화하지 못했다. 어쩔 땐 부모가 계속 있어주어도 그 알이 부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펭귄은 다른 해에는 짝을 바꿔서 나타나기도 하고, 한번 맺은 부부의 연을 그다음 해에도 이어가는 경우가 있다.
펭귄이 약 40일 정도 알을 품어주면 어렵사리 알에서 새끼가 태어난다. 그때가 약 10-11월 정도 되는데 새끼들은 처음부터 파란 털이 아니다. 갈색(Brown) 색의 뽀송뽀송한 털북숭이다 (얼마나 귀여운지! 그 새끼들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그렇게 둥지에서 부모가 주는 먹이를 기다리고 조그마한 몸이 어른처럼 자라기 시작하면 털갈이를 시작한다. 갈색털이 빠지고 오일이 뭍은 매끈한 파란 털이 나타난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면, 그들은 떠난다. 바다로.
첫해 펭귄을 관찰하기 시작했을 때 그 놀라움, 환희, 감동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매 순간 느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 모두가 떠난 빈 둥지를 확인했을 때, -그렇게 어렵게 태어나 귀여운 첫발을 떼고, 털을 갈고, 잘 먹어 포동포동했던 그들이 떠난 빈 둥지를 확인했을 그때- 나는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엄청난 허전함을 느꼈다. 눈물도 핑 돌았다. ‘인사도 안 하고 가냐 정말.’
그날 옆오피스의 S에게 펭귄이 떠났다고 하소연했다.
‘오늘 펭귄들이 떠났어요. 둥지가 완전히 비어 있더라고요. 그 애들이 엄청 자랑스러운데, 갑자기 막 눈물이 나올 거 같은 거 있죠’
‘아, 그거 빈 둥지 증후군 같은 거예요. 저도 제 딸이 대학 간다고 남섬으로 떠났을 때 그 애의 방을 보면서 느꼈어요. 자랑스러운데 엄청나게 허전하거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그게 삶인데’
그 말을 듣자, 엄마가 생각났다 (나이가 있어 어머니라고 하고 싶지만 너무 신파스러울까 봐 엄마라고 하고 싶다.) 엄마도 똑같이 느꼈을 거였다. 그리고 지금도 느끼고 있겠지. 자랑스럽지만 허전하겠지. 내가 자라나는 걸 볼 때마다 엄마도 감격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S가 말한 대로 그 또한 삶이었다.
운 좋게도 지난해 우리 연구소 서식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펭귄은 올해에 파트너를 데리고 다시 우리 서식지로 돌아왔다. 이제 곧 아빠가 될 거였다.
나도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아기 펭귄이 털갈이를 시작하면, 등에 칩을 주입하는 일을 한다. 펭귄의 몸무게, 부리의 길이와 넓이를 잰다. 칩을 주입하고, 그 칩 번호에 따라 어디서 태어났는지, 성별은 무엇인지를 기록하면, 우리는 그 펭귄이 다른 서식지를 가더라도 그들의 출신을 알 수 있다. 칩을 주입할 수 있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들은 파란 털이 나기 시작하면 금세 바다로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뉴질랜드에 와도 한국인 DNA가 튀어나오듯. 블루펭귄들처럼 그렇게 나도 떠나왔지만, 오리지널 한국인이다.
얼마 전 시도했던 펀딩 따기는 결국 실패했다.
한국처럼 정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맛집을 찾는 것도, 안락한 집을 찾는 것도 모두 실패했다.
아직도 외롭고, 아직도 혼란스럽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은 돌아갈 수 없다.
* Urban wildlife Trust의 활동은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ttps://www.urbanwildlifetrust.org/korora-cam-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