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표류기

너는 특별하지 않다.

by Self Belief
너는 특별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을 대로 살아.



나는 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다.

어떤 규칙이나 바운더리 없이, 본능에 충실한 채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거지여도 괜찮았다. 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그냥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늘 그렇게 살지 못했다.

무언가 열심히, 잘해야만 할거 같았다.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열심히 내 몫을 잘 해내면 가족이, 세상이 안정적인 듯 보였다.

그렇지만 그 열심은 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럼 나는 더 열심히, 잘해야만 했다.

나는 사실 태어나길 특별하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게 어쩌면 효도의 한 방법 같은 거라서? 아니면 그래도 남들 눈에 있어 보이고 싶어서?


뉴질랜드에 온 첫 주에 나는 '물고기는 없다'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의 아버지가 '너는 특별하지 않아.'라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그 글귀를 읽는 순간, 나는 '그럴 줄 알았어!'라고 되뇌었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특별하지 않을 줄 알았다.

진작에 이걸 인정했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살았을 텐데.


너는 특별하지 않다는 말은 너는 남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말이 아니었다.

너는 자유롭다는 말이었다. 나는 특별하지 않음으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었던 거다.



가끔 '북한사람들이 탈출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일'과 같은 쇼츠를 보게 된다.

너무 북한에서 굶어서, 한국에 왔을 때 여러 반찬과 밥을 보곤 너무나 모두 배 터지게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배식판에 첫 끼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다 먹지도 못한다는 얘기였다.


내가 딱 그 짝이었다. 밤 11시까지 일하지 않아도 됐고, 주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됐다. 모든 사람은 친절하고, 시간은 남아돌았다. 뉴질랜드에 와 여태껏 경험하지 않은 조르바와 같은 삶을 동경했으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랐다. 모든 게 좋았지만, 결국은 불안했다.


매일매일이 불안하다.


익숙한 한국에 가고 싶다. 아니다 답답한 한국에 가기 싫다. 아니다 한국에 가서 일하면 좋을 것이다. 아니다 한국에 가서 일하면 불행할 것이다. 무한 반복의 굴레를 가졌다.

그러니까 불안은 어떤 의미에서는 헤어지지도 못하는 오래된 연인 같은 거였다.

그가 나쁜 사람이란 걸 알아서 아무리 떨쳐내려 애를 써도 결국엔 잘 안 됐다.


그러다 불현듯, 이 불안이 내 선택에 대한 의심에서 싹튼 것이 아니라, 알에서 나와 다른 세계로 향하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Out of comfort zone. 내가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세상 모두가 살아본 적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매일매일은 늘 새것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으니까 막살아도 상관없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된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그러니까 망쳐도 금방 끝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 결국에 나는 생각보다 괜찮다.

나는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서 살기 보다, 세상의 무엇이 되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했다.

어떤 면에서 불안은 내가 알을 깨고 있다는 징표일 것이다.


나는 지금 표류한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물은 형체가 없고, 꽉 차며, 힘 있다. 그렇게 표류하다가 어느 날엔가는 또 다른 불안을 안고 한국 땅을 다시 밟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표류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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