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을 앞두고 돌아보는 스무 살의 청춘여행
아주 열렬히 배낭여행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도마뱀이 후드득 움직이던 아유타야의 500밧짜리 게스트하우스. 찬물로 씻어 내린 하루의 피로, 자전거를 빌려 유적지를 한 바퀴 도는데 뙤약볕 아래 코끼리가 지나가던 풍경. 그때는 그게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문득 그리워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Back to the 청춘’이라며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중이다.
낯선 사람들과의 조우가 자연스럽던 때였다. 위생 따위는 수박주스 10잔이면 맞바꿀 수 있을 것 같았고, 배낭여행자는 왠지 후줄근하게 다녀야 할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흑역사만 양산했지만)
터키 카파도키아; 문 열자마자 바로 침대가 나오는 작은 동굴 호텔.
베트남 하노이; 오토바이 기름 냄새를 뚫고 코를 유혹하던 새벽의 반미.
태국 코 싸멧; 비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노을 진 항구.
태국 코 따오; 식당에 갑자기 노루가 난입해, 주인이 커다란 우산을 휘두르며 “훠이이!”, 신나서 방방 뛰어다니던 손님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하이네켄 팩토리에서 티켓 값 뽕은 뽑아야겠어서 못 마시는 맥주를 들이켜다 어지러운 와중에 거리를 채운 대마 냄새 때문에 더욱이 헤롱헤롱한 날.
일본; 카우치 서핑으로 떠돌던 일본, 이름 조차 기억이 안 나는 어려운 이름의 소도시들.
중국 상해; 기름에 푹 담긴 만두들이 가득하던 시장의 nuknuk 한 냄새.
방콕 왕복 티켓 25만 원에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귀국 비행기를 까맣게 잊어버려, 호텔 로비에서 “안녕히 계세요!” 하고 키를 던지며 튀어나왔다. 두 팔 벌려 급하게 잡아탄 택시에서 기사님께 외쳤다. “Run, run!”.
그러나 도착한 공항에서는 저 멀리 비행기가 이륙 중. 결국 편도 50만 원짜리 새 표를 끊고, 당시 한국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학원 원장님께 비행기를 놓쳤다며 알리는데 사실인데도 핑계처럼 들릴까 억울했던 후일담부터,
여행자들의 성지, 가이드북이 없어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태국 카오산 로드에 내렸을 때 온몸을 감싸던 그 파워풀한 에너지에 매료돼 한 달을 여행하고도 일주일 더 귀국을 미뤄야겠던 오기 때문에, 맥도날드에 앉아 교수님께 “여행기로 리포트를 대신 제출할 테니 출석 인정해 주세요”라는 패기 넘치는 메일을 보냈던 날들까지.
경유지 공항에서 15시간을 버티며 재미없는 책과 몇 곡 안 들어가는 아이리버 MP3로 시간을 때우기도 하고.
종이 티켓을 쥐고 떠난 편도행 여행에서 두 달 만에 돈 떨어져 돌아와,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맞고 곰국 한 그릇 먹으며 다시 현실로 복귀하던 순간까지 어느 것 하나 쉬이 넘길 날이 없었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여행지에서 여행객처럼 안 보이고, 자연스러운 현지인처럼 보이려면 배낭이 아니라 핸드백을 메야해!'라고 말하던 20대 후반의 직장인 언니가 그렇게 멋있어보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누가봐도 사기꾼 타겟이었던 비쥬얼이었음을 잊을 수가 없고 마냥 귀엽게만 느껴진다.
30대 후반이 되어 나의 청춘을 돌아보니 지킬 것이 많아 경험의 반경이 줄어드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아는 것이 많아졌고, 가진 것이 더 커져버려서 더 편안하게 선택적으로 '럭셔리한' 배낭여행을 할 수 있음에도 이제는 더이상 불가능한 여행이다.
없었기 때문에 없어야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다.
값싼 표로 떠났던 그때의 청춘은 그 어떤 금은보화로 살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다 아는 줄만 알았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20대의 여행.
오징어잡이 배에 그대로 납치돼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던 꼬사멧의 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트럭 위에서 남긴 사진 한 장을 물끄러기 바라보니, 그 날 밤의 습기가 아직도 내 뺨을 끈적하게 스치는 듯 하다.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banana republic by john legend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