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이별

비싼 호텔식 휘트니스 클럽에 작별을 고하다.

by 어른돌

2년 반 다녔던 헬스클럽을 재등록하지 않았다. 그냥 회사 근처에 있어서 공기 마시듯 익숙하게 다녔던 헬스클럽이었다. 가격이 비싸긴 했어도 호텔식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시설을 100% 이용할 수 없더라도 내가 늘 이용하던 계단 오르기 머신과 TV가 달린 자전거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됐었다. 하지만 이직을 할 수도 있겠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치솟는 카드값 대비 낮아진 월급, 그리고 생각보다 잘 가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기약 없는 이별이랄까.


서울역 펜타클 피트니스에서의 마지막 운동을 마치고 뜨거운 탕 안에 앉았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지금 일상적으로 해온 아주 사소한 것들도 기억이 나질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41도의 뜨거운 욕탕 안에 있던 내 숨이 확 막혀왔다.


'그래. 10년 전 이사오기 전에 있었던 집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었지? 계단을 올라 옥탑방에 들어서면 퀘퀘한 냄새를 풍기는 신발장이 맞은편에 있었는지 측면에 있었는지? 강아지는 어떤 표정으로 반기고 있었지? 아니, 반기러 나오기는 했나?'


기억이란 건 결국 가물가물하다가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 수는 없나? 문득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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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나하나 다 찍고 싶어 졌다. 헬스장 내부 사진들이야 오랜 시간 운동을 하며 틈틈이 찍어둔 것들이 있다. 과거 수영장을 리모델링한 것이라 가운데 수영장처럼 커다란 홀이 있는데 그 속에서 근력운동과 스트레칭 등이 이뤄졌다. 사람들이 P.T를 하면 거기서 했다. 희미하게 사진 속에 담지 못한 것은 런닝머신의 배치, 자전거의 개수, 내가 자주 사용하던 기구의 브랜드, 필라테스 선생님의 무표정한 얼굴 등이었다.


담을 수 없는 곳은 내가 가장 헬스장에서 좋아하던 사우나, 추운 겨울엔 뜨끈하게 지지고 더운 여름엔 찬물 끼얹고 땀 식혔던 그곳이다. 연간 100만 원에 육박하는 시설 이용료를 내면서도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호텔식 사우나. 뜨거운 욕탕 안에 있던 나는 눈으로 하나둘씩 현재의 모습을 담았다. 2017년 7월 25일 오후 9시, 열탕엔 사람 없음. 온탕엔 나와 어떤 청년. 냉탕엔 어떤 외국 사람. 45도 방향에 건식 사우나가 있고 그 맞은편에 습식 사우나가 있다. 바닥은 돌이고 천장 마감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얼굴 위로 떨어질 것만 같은 물방울이 맺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학창 시절, 책상 위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파편처럼 하나둘씩 남아있던 기억조차도 이젠 희미해지고, 가끔 오랜 친구가 본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나의 모습을 꺼내 줄 때 비로소 나는 소녀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이것이 시간의 흐름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거늘 난 뭘 그리 집착하려고 했는가. 그러니 이렇게 글을 끄적이며 나에게서 헬스클럽을 보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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