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하나씩의 성취

by 어른돌


아주 작은 성취도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시험 점수나 자격증의 합격 같은 것. 누가 나 때문에 좋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해주거나 그런 것들. 그래 그나마 최근에 양성희가 속초를 가서 내가 먹은 오징어순대를 먹고 인증을 보내온 게, 내가 누군가로 하여금 그 장소로 가게끔 만들었다는 이유로 2022년 최고의 성취로 남는 게 아닐지 갑자기 무서워졌다. 성취를 얻어보려고 혹시나 던져본 신춘문예는 역시 안됐고, 대한항공 여행 사진 공모전 역시 낙선할 것 뻔하다.


성취에 대한 욕망 때문인지 며칠 전엔 신기한 꿈을 꾸기도 했다. 꿈에서 나는 근육질의 사내들이 잔뜩 무대에 서는, 쿨가이 선발대회 같은 대회에 나갔는데, 나도 웃옷을 벗고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꿈에서도 자신감이 없었던 나는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 '내가 왜 나왔지?' 반문하며 자책했지만 결국 80명 중 10위 정도에 랭크됐다. 대회가 끝난 후, 막상 내가 찍힌 사진들을 보니 나도 꽤 경쟁력 있어서 순위권에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꿈에서 깨어난 후 한동안 기분이 좋긴 했지만, 출근 준비를 하며 이내 허무해졌다.


가끔은 꿈속에 내 '부캐'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무의식 중에 셋업 한 나의 부캐. 얼핏 착해 보이지만 다혈질에 괴팍하고, 평생을 비만으로 살아온 나의 욕망이 그대로 담긴 부캐. 키는 그렇다 치고 호감형 외모에 적당한 체형, 구릿빛 피부에 근육량도 어느 정도 이상인, 야구 선수를 떠오르게 만드는 인상. 꽁해있지 않고 쿨한 성격, 화가 나도 어느 정도 참을 줄 알며 불의를 보면 바로 달려들고 악을 무찌를 수 있는 깡, 거기에 깐깐하게 따져드는 사람을 특유의 언변능력으로 떠나갈 수 있게 만들 정도의 부캐랄까. 원망과 욕망이 모두 담긴 부캐는 이상적이면서도 무서울 수 있지.


언젠가 현생에서의 전원이 꺼지고 꿈속 부캐로 살게 된다면, 살면서 이루지 못한 모든 것들을 조그만 종이에 끄적여서 함께 가져가고 싶다. 거기서 매일 하나씩 성취하면서 살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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