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우리 주인 아니야?

D+3307 첫째

by 바다별

"아빠, 이상한 일이 있었어."

잠자리만 누워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 하는 게 규칙이 됐다.

딸은 언제나 큰 일이라도 난 듯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덕분에 불꺼진 안방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판이 벌어진다.


"어떤 언니가 엄마한테 같이 자자고 했는데, 그 언니 아빠가 엄마는 자기꺼라서 안된다고 했대."

"그건 너무 당연한 말이잖아. 맞는 말인데?"

아무래도 딸은 내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나보다.

엄마는 자기들꺼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엄마랑 아빠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살기로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아빠는 엄마꺼고, 엄마는 아빠꺼야. 너희한테 엄마는 아빠가 빌려준거지."

"그럼 우리는 엄마, 아빠꺼야?"

"아니?!! 그건 아니야. 너희는 너희들 자신꺼야. 엄마, 아빠꺼 아냐."

"왜? 엄마가 낳았잖아."

엄마, 아빠는 서로 상대방을 갖는데,

자신들은 거기서 쏙 빠진게 못내 서운한가보다.

첫째는 강하게 소유권 이전을 주장한다.

하지만 안될 일이다.

어린이야, 네 인생은 네 것이란다.


"낳았다고 해서 너희 주인은 아냐. 엄마, 아빠는 너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보호하고 키우는 거지. 주인이기 때문은 아냐. 너희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각자 너네 원하는 삶을 살러 가야지~."

딸은 처음에는 주인을 갖지 못한 것에 서운해했지만,

계속 설명을 듣고는 부모가 주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해한 것 같다.

그래 딸아.

바르게 잘 자라서, 네 주인은 네가 알아서 찾으렴.




부모가 아이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도를 갖고 자녀의 삶을 빼앗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부모의 그늘에 머물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는 후자에 가까웠다.


나는 언제나 내 방식대로 삶을 결정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군을 선택한 것도, 군을 나선 것도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군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아버지는 크게 역정을 내셨다.

거센 역정은 오랫동안 잔불로 남았다.

어쩌다 아버지가 소주라도 한 잔 하는 때에는

"나는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라며 성난 얼굴을 하곤 하셨다.


'아버지는 왜 화가 났을까. 내가 더 행복하다는데, 아버지는 왜 내가 더 힘들기를 바라는 걸까.'

한 때는 나도 덩달아 뜨거운 마음이 솟구치곤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버지의 "화"가 서운함과 아쉬움, 안타까움이 뒤섞인 슬픈 감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 뜻대로 잘 달리던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저만의 길을 가겠다며 선언"한 일은 아버지에게는 큰 상실을 안겼을 것이다.

어찌보면 애처로운 일이기도 했다.


나 역시 편하지는 않았다.

삶을 좌우하는 큰 결심을 내렸음에도,

이를 부모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전역후에도 부모님을 찾아 뵙고, 함께 여행도 갔지만

나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작지만 희망찬 성과를 거두더라도

아버지에게는 쉽게 꺼내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부자는

내가 태어난 지 40년이 되어서야

서로의 삶을 분리하는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2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예전만큼 화를 내지 않는다.

나 역시 이전처럼 힘들진 않다.

아픈 상처를 애써 모른채 하는 것인지,

정말로 딱지가 앉고 굳은살이 벤 것인지는 모르겠다.


둘 중 무엇이 되었건

이번 설에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자식 잘 되기 바라는 부모와

부모 마음에 들려 애쓰는 자식이 아니라

서로 한 사람으로 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려 한다.


그렇게,

묵은 상처라면 늦게라도 치료하고

해묵은 흉터라면 따스하게 만져주기라도 하려한다.

그간 고생한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