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327 첫째
"나, 고려를 잘 모르겠어."
저녁식사 하던 딸이 갑자기 말한다.
고려라니?
무슨 소린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가만히 듣고 보니 태권도 이야기다.
두 아이는 태권도를 배운다.
시작한 지 꽤 되어서 둘 다 작년에 품띠를 땄다.
첫째는 올해 2월에 있는 승품심사를 준비중인데,
'고려'는 승품심사에서 시연할 품새의 이름이다.
"내일 모레가 심산데, 어쩌려고 그래??"
"그래서 걱정된다고."
"관장님한테 직접 말씀드리고 잘 모르는 부분 더 연습해봐."
태권도 품새라니...
그야말로 넘사벽의 영역.
도와 줄 수 있는게 없다.
다행히 딸은 집중교육을 받고서 자신감을 충전할 수 있었다.
승품심사 당일.
고양시 어울림누리 체육관을 찾았다.
벌써 세 번째로 방문하는 곳이다.
광장 한 쪽 서 있는 양들을 보고, 둘째가 달려간다.
제일 큰 양에 올라타서 한 장.
매번 올 때 마다 찍는 사진이다.
먼저 도착한 딸은 연습에 한창이다.
"고려 괜찮아?" 물으니,
"그건 이제 완전히 알아."라고 답한다.
어쨌든 화이팅이다.
태권도 승품심사는 응시자 급수에 따라 나누어 진행된다.
2품 승급시험을 보는 딸은 3부.
오매불망 누나만 기다리는 둘째.
모두 떠나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뒷모습에 결연한 의지까지 느껴진다.
기다리는 동안 계속 심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진 않다.
마침 4단 성인반의 심사가 있었는데,
꼬맹이들의 덩실거림과 차원이 다른, 진짜 태권도를 볼 수 있었다.
드디어 2품 심사 대상자 입장.
딸은 가족을 찾느라 두리번 거리며 심사장에 들어왔다.
제일 앞줄에 앉아 누나를 기다리던 동생은 신이 나고,
동생을 본 누나도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아이고, 많기도 하다.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들을 통제해서 자리에 앉히고,
심사가 시작됐다.
딸은 열심히 준비한 고려는 잘했는데,
오히려 태극 6장에서 잠시 버벅이고 말았다.
잠깐 허둥대긴 했지만,
끝까지 품새를 잘 마치고 겨루기도 끝냈다.
1품 때 겨루기는 앞뒤로 피하기만 하더니,
2품부터는 아이들이 좀 더 뒤엉켜 부딪힌다.
그렇게 수준을 올려가며 4단이 되나보다.
승품심사를 마치고,
역시나 두 어린이는 양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까 본 그 양과 다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잘 있어 양아.
가을, 둘째 승품 심사 때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