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열심히 하는 건데, 엄마가 맨날 대충한대

D+3168 첫째

by 바다별

아이들의 저녁 공부를 봐주는 것은 내 역할이지만 첫째의 영어 공부만은 아내가 맡고 있다.


아내는 지금도 하루를 빼놓지 않고 회화공부를 할 만큼 영어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구수하게 ABCD 밖에 못하는 나와는 달리 꼼꼼하고 정확하게 첫째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가끔 첫째의 컨디션에 따라 영어 공부 시간이 길어지는 때가 있는데, 9시 30분을 넘도록 공부시간이 늘어지면 나는 둘째를 데리고 먼저 잠자리에 든다.


그날도 첫째의 영어 공부가 유난히 더딘 날이었다.

아들과 먼저 들어와 자고 있는데 공부를 마친 딸이 엉엉 울며 들어왔다. 딸아이 공부하는 소리와 아내의 성난 목소리를 안방에서도 생생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밖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공부 시간이 늦어지면서 딸아이는 마음이 급해졌고, 건성으로 지문을 읽다 아내에게 잔소리 들은 것이었다.


나는 늘 열심히 하는건데, 엄마는 맨날 대충 한대.

영어공부를 하다가 눈물을 보이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서러움이 복받친 울음이다.

제 딴에는 노력했는데 그걸 평가절하 당했으니 어지간히 억울했나보다.


내 생각엔 대충한 게 맞아보였지만...

일단은 조용히 딸을 다독여주었고 훌쩍이던 딸은 이내 잠이 들었다.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다 보면 항상 답답함이 있다.


뻔한 문제를 헤맬 때는 ‘왜 이걸 모를까’ 하는 답답함이 있고,

틈만 나면 딴 짓을 하는 걸 보면 ‘집중해서 끝내는 게 나을 텐데’ 하는 답답함이 있다.

그 중 최고는 눈도 제대로 못뜨고 꾸벅꾸벅 조는 때인데, 이때는 답답함을 넘어 부아가 끓어오른다.


졸다가 혼나는 아들.

대충한다 혼나는 딸.


그럼에도 아내도 나도 알고 있다.

두 어린이 모두 이미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잘 하고 있어. 어린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