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북성해장국
한때 피처폰 시장을 삼성, LG와 함께 어깨를 견주며 삼강 구도를 만들어냈던 <팬텍>이라는 회사가 있었더랬다. 스마트폰으로의 혁신적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아쉽게도 생태계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2013년 팬텍이 출시한 <베가 아이언>이라는 제품의 CF에서 배우, 이병헌이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고 했던 광고 카피는 두고두고 패러디로 재생산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퇴근 후 버스를 타고 달려가 만난 노포 해장국집에서 국물 한술 뜨는 순간 기억 서랍 안쪽 구석에 처박혀있던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해장국>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분명 상호를 북성해장국이라고 알고 갔건만, 간판에는 <북성 곰탕 그리고 해장국>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해장국 역시 소뼈를 고아낸 곰탕 베이스의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야 돼지 등뼈를 이용한 감자탕 해장국 식당이 흔해졌지만, <서울식 해장국>은 소뼈와 우거지, 선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이 집의 해장국이 여타 식당과 다른 점은 대부분 소뼈의 잡내를 감추기 위해 된장을 풀어내는데 반해 신선 재료의 공수와 나름대로의 고유 비법이 있는 것인지 <뽀얀 맑은 곰탕>을 베이스로 제공된다는 것이다.
오랜 전통의 명가 식당이 모두 그러하듯 음식에 장난을 치지 않고, 고유 비법 그대로 묵묵히 음식을 만들어내는 정성이 불과 몇 수저 뜨지 않고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해장국 식당이 속을 풀기 위해 왔다가 반주 겸 한잔 더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 집은 내가 아는 한 <술을 판매하지 않는 유일한 해장국 식당>이다. 다만 아쉬워하는 손님을 위해 직접 술을 사 와 먹는 것은 테이블당 1병까지 허용된다. 해장국집에서 당연히 팔아야 할 마진 높은 상품인 소주를 콜키지 프리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신기하여 홀을 담당하는 사장님께 여쭤보니 이는 1978년 장모님께서 개업할 당시부터 지켜져 내려온 전통이라 하신다.
해장국(특)을 주문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선지가 탕 그릇이 아닌 별도 접시에 제공된다는 것이다. 선지를 좋아하지 않는 고객을 위해 별도로 제공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난 오히려 뭉근하게 제대로 끓여낸 선지 본연의 신선함을 맛보라는 주인장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 국밥 한 그릇에 들어간 정성과 맛에 비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 한 이 식당의 선지의 신선함과 탱글함은 유수 언론 매체에 소개된 유명 식당들과 자웅을 겨뤄도 손색이 전혀 없다.
같은 식재료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이 집의 선지를 보면 표면이 매끈한데 이는 조리 과정에서 뭉근한 불로 조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확 끓어오른 상태에서 선지를 넣으면 표면이 현무암처럼 기포가 생기고 맛도 푸석해진다.
술을 판매하지 않는, 그리고 선지를 별도 그릇에 내어주는 이 독특한 식당의 세 번째 차별성은 바로 <청양 고추지>이다. 대부분의 국밥집 양념 다진 양념은 고춧가루를 기반으로 만들지만, 이 집은 청양고추를 2백여 일을 절여 직접 만드신다는데 국물에 풀어 먹어도, 선지와 곁들여 먹어도 깔끔하게 올라오는 매운 감칠맛이 마치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을 안겨준다.
# 추가잡설
시중 식당의 선지국밥 뚝배기에 십중팔구 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거지>이다. 동물의 피를 응혈 시켜 만든 선지에는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건강에는 좋지만, 특유의 향과 푸석한 맛이 있어 조리가 쉽지 않은 식재료이다. 해장국에서의 우거지는 바로 그 선지 특유의 맛을 중화시켜주고 사골의 느끼함을 잡아줘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이끌어내는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