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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17. 2021

Since 1978, 술을 팔지 않는 해장국집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북성해장국


팬텍 베가아이언 CF(上)와 “단언컨대”를 패러디한 왕뚜껑 CF(下)

한때 피처폰 시장을 삼성, LG와 함께 어깨를 견주며 삼강 구도를 만들어냈던 <팬텍>이라는 회사가 있었더랬다. 스마트폰으로의 혁신적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아쉽게도 생태계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2013년 팬텍이 출시한 <베가 아이언>이라는 제품의 CF에서 배우, 이병헌이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고 했던 광고 카피는 두고두고 패러디로 재생산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퇴근 후 버스를 타고 달려가 만난 노포 해장국집에서 국물 한술 뜨는 순간 기억 서랍 안쪽 구석에 처박혀있던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해장국>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1978년 개업한 2대 노포, 북성해장국 식당

분명 상호를 북성해장국이라고 알고 갔건만, 간판에는 <북성 곰탕 그리고 해장국>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해장국 역시 소뼈를 고아낸 곰탕 베이스의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야 돼지 등뼈를 이용한 감자탕 해장국 식당이 흔해졌지만, <서울식 해장국>은 소뼈와 우거지, 선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곰탕 베이스의 뽀얀 국물 해장국

이 집의 해장국이 여타 식당과 다른 점은 대부분 소뼈의 잡내를 감추기 위해 된장을 풀어내는데 반해 신선 재료의 공수와 나름대로의 고유 비법이 있는 것인지 <뽀얀 맑은 곰탕>을 베이스로 제공된다는 것이다.


오랜 전통의 명가 식당이 모두 그러하듯 음식에 장난을 치지 않고, 고유 비법 그대로 묵묵히 음식을 만들어내는 정성이 불과 몇 수저 뜨지 않고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해장국 식당이 속을 풀기 위해 왔다가 반주 겸 한잔 더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 집은 내가 아는 한 <술을 판매하지 않는 유일한 해장국 식당>이다. 다만 아쉬워하는 손님을 위해 직접 술을 사 와 먹는 것은 테이블당 1병까지 허용된다. 해장국집에서 당연히 팔아야 할 마진 높은 상품인 소주를 콜키지 프리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신기하여 홀을 담당하는 사장님께 여쭤보니 이는 1978년 장모님께서 개업할 당시부터 지켜져 내려온 전통이라 하신다.


해장국(특)을 주문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선지가 탕 그릇이 아닌 별도 접시에 제공된다는 것이다. 선지를 좋아하지 않는 고객을 위해 별도로 제공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난 오히려 뭉근하게 제대로 끓여낸 선지 본연의 신선함을 맛보라는 주인장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 국밥 한 그릇에 들어간 정성과 맛에 비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 한 이 식당의 선지의 신선함과 탱글함은 유수 언론 매체에 소개된 유명 식당들과 자웅을 겨뤄도 손색이 전혀 없다.


뭉근하게 끓여낸 북성해장국의 선지

같은 식재료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이 집의 선지를 보면 표면이 매끈한데 이는 조리 과정에서 뭉근한 불로 조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확 끓어오른 상태에서 선지를 넣으면 표면이 현무암처럼 기포가 생기고 맛도 푸석해진다.


술을 판매하지 않는, 그리고 선지를 별도 그릇에 내어주는 이 독특한 식당의 세 번째 차별성은 바로 <청양 고추지>이다. 대부분의 국밥집 양념 다진 양념은 고춧가루를 기반으로 만들지만, 이 집은 청양고추를 2백여 일을 절여 직접 만드신다는데 국물에 풀어 먹어도, 선지와 곁들여 먹어도 깔끔하게 올라오는 매운 감칠맛이 마치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을 안겨준다.




# 추가잡설

시중 식당의 선지국밥 뚝배기에 십중팔구 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거지>이다. 동물의 피를 응혈 시켜 만든 선지에는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건강에는 좋지만, 특유의 향과 푸석한 맛이 있어 조리가 쉽지 않은 식재료이다. 해장국에서의 우거지는 바로 그 선지 특유의 맛을 중화시켜주고 사골의 느끼함을 잡아줘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이끌어내는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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