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보타르가>
생선은 한 번에 수백 개 이상의 알을 낳기 때문에 생선알은 고래로부터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통했다. 수렵 농경 시대로부터 내려온 "먹음으로써 그 힘을 갖는다"라는 주술적 믿음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녀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을 그린 괴이한 제목의 일본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역시 이러한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다.
생선알 특유의 식감과 풍미가 육고기 못지않다 보니 예로부터 철갑상어 알은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였고, 성게알은 스시야에서 가장 값비싼 재료 중 하나이며, 명태의 알인 명란은 우리네 식탁에서 널리 사랑받는 반찬이다.
만드는 과정이 수고로워 비싼 가격 때문에 대중화되진 않았지만 권세가와 재력가들의 사랑을 받는 생선알로 만든 음식이 있으니 바로 <어란>이다. 봄철 알밴 숭어를 잡아 50여 일간 그늘에서 청주와 조선간장, 소금과 참기름을 이용해 말리는 수고를 거듭하니 어란 한쌍에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우리나라에는 식품명인 지정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전통 식품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각 분야의 명인을 지정하여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중 수산전통식품 분야로 최초의 명인 타이틀을 받으신 분이 바로 영암에서 어란을 만드시는 <김광자 할머님>이다. 대대로 어란 만드는 집에 19살 시집오셔서 75여 년을 어란을 만드셨다는 할머님은 백수(白壽)를 몇 해 앞두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영암 어란은 조선 시대 서울로 올려 보내는 남도의 토산품(土産品)으로 힘깨나 쓰는 권세가의 주안상에 어란을 얼마나 올리는지에 따라 주인장의 그릇과 객을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하니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던 음식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 음식으로 올렸다는 어란은 지중해 연안지역에서 <보타르가 ; Bottarga>라 불린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소재한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타르가의 시그니처 메뉴는 상호에 언급된 <어란 파스타>인데 바로 국내에서 최고로 치는 어란 명인, 김광자 할머님의 제품을 공수하여 사용한다. 정통 이탈리안 식당이라 당연히 지중해 지역의 방식으로 소금으로 염장하여 햇볕에 말려 만든 어란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소금으로 염장하여 간장과 참기름을 덧발라내 그늘에서 말리는 전통 방식의 어란을 사용한다.
소금만 사용하여 짠맛만 강조된 지중해 어란보다 감칠맛이 좋은 조선 어란과 올리브 오일의 조합은 기대 이상의 감칠맛을 일으켜 파스타의 진한 풍미를 불러오는데 그 비싼 어란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먹는 방법은 포카치아(빵)를 추가로 받아 오일 소스를 찍어 먹는 것이다.
굽기 정도를 미디엄으로 주문한 채끝 스테이크 역시 완벽하다. 소금과 후추, 오일 등 기본 재료로만 시즈닝을 한 듯 고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고기를 썰어내는 나이프의 손맛 자체가 완벽한 고기와 숙성, 굽기와 레스팅이 행해졌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