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와 친환경 미니멀리즘
벨리즈 여행에서 가장 관심이 컸던 코스는 셋째 날 이루어진 마야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정말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가 인신 공양에 관한 것이었는데 언젠가 어릴 적 보았던 영화의 소름 끼친 장면이 너무 각인이 되어서이다. 가이드가 정말 궁금했던 점을 다 설명해 주어서 더할 나위 없이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동굴 투어를 시작하는 가이드에게 실례인 줄 알았지만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에 나도 모르게 메스티조? 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며 마야인과 유럽 인의 혼혈족인 메스티조가 벨리즈의 인구 중 34%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치의 불빛도 없는 깜깜하고 차가운 동굴에 해드라잇이 부착된 헬멧을 쓰고 커누를 타고 시작되었다.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존재했을 테니 얼마나 마야인들이 동굴을 신성시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침착하고 형태가 신비로웠다. 그 속에 발견된 수많은 사람의 뼈는 얼마나 많은 인신 공양이 이루어졌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과테말라에 있는 티칼이라는 유적지를 가기 위해서 리조트에서 주선해준 택시 드라이버를 국경선에 있는 출입국 관리소에서 만나 곧장 유적지로 향했다. 2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적지가 정글로 덮여있다가 발견된 것이 1840년이니까 AD 700에서 900년까지 존재했던 마야 문명은 거의 천년 간 숲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정글의 나무들을 베고 라임스톤으로 벽돌을 만들어 탑과 궁궐과 피라미드를 세워 백만 명 가까이 살았던 문명의 도시로 엄청 넓은 지역에 분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라임스톤으로 벽돌을 만들려면 불에 라임스톤을 달구어야 단단한 사각형 돌이 된다니 얼마나 많은 나무를 베어야 했을까? 정글의 나무가 비가 오면 습기를 머금었다가 내뿜으면 구름이 되어 다시 비로 내리는데 나무가 없으니 비가 내릴 리가! 그래서 신이 노했나 보다면서 기우제로 귀중한 사람의 목숨을 공양한 것이다. 전사들의 경기장에서는 처음엔 싸워서 진 사람이 제물로 희생되었는데 나중에는 승자가 더 영광스럽다면서 승자를 바쳤다고 한다.
잘 몰랐을 때는 유럽 사람들이 들어와 문명을 몰살시킨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야 인이 이룩한 찬란한 문명을 자기들 손으로 영문도 모른 체 망친 것이었다. 그때는 과학을 몰랐으니까 비가 오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문명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 다 들 살 길을 찾아 문명을 버리고 다시 정글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로 정글의 나무가 다시 자라나 터를 다 덮었고 1840년에 그 터가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을 개발해서 이룩한 현대 문명이 혹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과학을 모르던 야만의 시대에 비해 지금 인간의 영성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지금 정치 상황에서 얼마나 사람들이 분풀이 희생양을 찾는 지를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