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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 느티나무 Jun 05. 2021

우리 집 모란이 피기까지는

다시 와줘서 고마워~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늘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 영랑


화단에 꽃을 심기로 결정한 것은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만한 나이가 된 후였다. 자갈돌이 화단을 채우고 있어서 다 끄집어내고 심심한 관목을 심는 대신 꽃을 심고 싶었다. 미시간 집들은 대부분 화단에 아주 작은 관목을 심고 일 년생 꽃들을 작은 관목 사이에 심는다. 관리가 편하고 또 일 년생 꽃이 화려하고 예쁘기 때문이다. 화단에 다년생 꽃과 일 년생 꽃을 섞어서 심었는데 다년생 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해마다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였다. 해마다 숱하게 다년생 꽃을 심었지만 다음 해 살아 나는 꽃은 미시간의 추위를 견딘 꽃이어야 해서 다시 보지 못한 꽃도 많았다. 다시 보게 된 것은 구근을 심는 꽃이고 이를 제외하고 꽃이라기보다는 관목에 가까웠다.


제일 먼저 키우고 싶었던 꽃이 수국이었다. 꽃망울이 크고 잎도 커서 마음에 들어 여러 번 시도를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잎은 다시 자라 나왔으나 꽃은 결코 피지 않았다. 그러길 몇 해, 시선을 끄는 탐스러운 꽃 봉오리와 가녀린 꽃 대가 있는 다년생이 있어 화단에 심었다. 그때만 해도 워낙 꽃 피우기에 아픈? 기억이 있어 다음 해 다시 보리라고 기대하질 않고 있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그 자리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고혹스러운 자태와 진 분홍색은 (꽃의 색은 뭐니 뭐니 해도 분홍색~) 항상 나를 매혹시켰다.

줄기마다 꽃망울이 맺혀 활짝 피어나면 해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고개를 해있는 쪽으로 향하다 무거워 꽃봉오리가 숙여지면 그를 받치기 위해 한데 묶어 자그만 나무 기둥을 세워 주었다.

꽃의 이름은 'Pheony'이고 꽃말은 로맨스, 번영, 행운, 행복한 결혼, 부귀영화, 정열이다. 이 꽃의 이름을 한국말로 알게 된 것은 어느 작가님이 소개한 시에서였다.

"아~ 모란이었구나!"

꽃 이름을 몰라도 좋았는데 이 꽃을 시와 연결시키자 그 맛이 백배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국어책에 실린 몇 안 되는 시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미시간에서는 6월이 되어서야 꽃망울을 터트리는데 정말 아쉬운 것이 그 기간이 2주 정도로 짧다는 것이다. 여름 내내 7월 8월까지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시에서 처럼 꽃이 지면 탐스러운 꽃잎이 하나씩 부스러져 떨어져 눕는데, 마치 연인과 헤어지기라도  것처럼 아쉬움이 남는다.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여름 내내 꽃이 사라진 무성한 잎을 보며 그 피었던 흔적을 더듬게 된다.

그러다 잊힐만하면 그 자리에서 다시 꽃을 피운다 한해도 빠짐없이...


또 다른 작가님이 모란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이름하야 작약이라고. 차이가 무엇인지 찾아보니 씨가 맺히면 모란이고 그렇지 않으면 작약이라고 나온다. 영어로는 작약이나 모란이나 모두 'Pheony'라고 되어있다.

봄을 고대하는 마음과 짧게 지나가는 봄의 아쉬움이 많은 작가님들의 공감을 얻어 글의 소재로 떠오르는 것 같다.

더 자세히는 'Chinese Pheony'라고 하며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자란다고 되어있다. pheony는 라틴어 'paeonia'에서 왔는데 뜻은 왕국이라고 되어있다. 흰색 피오니가 영국에 18세기에 들어오고 종류도 수 백종으로 가든에서 흔히 키울 수 있는 꽃이란다.
꽃 봉오리가 커서 부와 미의 상징으로 고대에 사랑의 감정을 전달할 때 주었으며 서로에 대한 열망, 슬픔, 작별하기 싫은 감정의 표현으로 이 꽃을 서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름도 모르던 꽃인데 그것을 선택하고 좋아하게 된 것이 "정서와 감정이 꽃과도 통하는가?”하는 신기함과 더불어 봄을 지나 이제 막 여름으로 접어드는 절기에 마지막 봄의 몸부림?을 피오니에서 느껴본다.

"다시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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