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대한 고정관념 버리기

나만의 공간에 찜하기

by 젊은 느티나무
공간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는 공간에 대한 편견을 깸으로써 시작된다.


거실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서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를 배제시켰다. 물론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아들이 주로 사용하였지만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방을 놔두고 추운 패밀리 룸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피아노가 있는 거실의 카펫을 빨리 걷어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방음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아들을 배려한 것이고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 나를 배려한 것은 아니었다. 거실에 마루를 깔고 무거운 커튼을 걷어 내고 내가 좋아하는 쿠션, 러그, 화분 덮개, 추상화를 걸어 완성하고 “이제 이곳은 내 공간이야”라고 찜을 하였다. 공간의 쓰임을 달리하니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창작의 기쁨이다. 내 공간이라고 명명하고 이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가족들은 이를 존중해 준다. 그러자 남편도 “패밀리 룸 컴퓨터 데스크는 내 공간이야”라고 선언한다. 공간을 구획해 놓지 않으면 어느새 자식들이 와서 다 점유해 버린다. 이 글은 무시된 공간을 재 발견하여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아이들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이었음을 깨닫는다. 가족은 모두가 공평하게 쓸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하며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공간의 모습이 다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집에서 살면서도 집을 모른다. 변화를 위해서라면 다른 공간을 찾아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공간이 백지라고 생각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듯 뭔가 다른 모습을 표현하기만 하면 원하는 공간을 가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공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지.


70년대 지어진 집들은 리빙룸과 패밀리 룸이 분리되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이 이 공간들과 더불어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 얘기하고자 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거실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세탁실 겸 머드룸(차고에서 들어와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공간)이 보인다. 주방은 현관의 벽 맞은편 가운데에 위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이닝 룸이 오른쪽 패밀리 룸이 왼쪽에 위치해 있다. 70년대에 지어진 집들의 구조가 대부분 이러한데 그 시절에 주방을 집의 한가운데 위치했다는 것부터 남다른 디자인 감각이라 생각한다. 침실은 모두 위층에 위치해 있다. 아래층에서 현관과 주방은 원목 나무 바닥이었고 나머지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먼지는 좀 나도 다칠 염려가 없고 소리도 흡수하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다녀도 시끄럽지가 않아서 카펫이 편리했다. 게다가 겨울엔 엄청 발밑이 푹신하고 따뜻했다.


2000년대에 건설 붐이 일면서 새로운 집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대체적으로 현관의 천정이 높고 현관과 거실이 하나의 오픈 공간으로 이어진 현대식 집이었다. 천정이 높은 것이 얼마나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 내는지 같은 평수라도 집이 훨씬 커 보였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집이 비좁아 보이기 시작했고 오픈 공간을 원했던 나는 새집으로 이사가 길 원했다. 그러자 마지못해 들고 나온 남편의 아이디어가 집을 넓히자는 것이었다. 집을 넓히면 원하는 공간을 가질 수 있고 천정이 높지 않아 난방비가 절약되며 무엇보다도 재산세가 엄청 절약되는 이점이 있다. 재산세가 집을 구입하는 년도에 따라 매겨지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이 이사를 꺼리고 집을 넓혀 고쳐 사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재산세 때문이다. 그래서 패밀리 룸과 마스터 베드룸을 확장했다. 배로 넓히니 처음에 방이 운동장 만하게 느껴졌다.


패밀리 룸


2006년 확장과 동시에 처음 가져 보는 인테리어의 기회,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나의 감각을 발휘해 볼 때였다. “모던하게” 가 모토였기에 패밀리 룸의 벽난로의 오렌지 벽을 중화시키기 위해 나머지 벽을 올리브 그린으로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어렸기에 아이들 중심으로 활기찬 색감을 찾아서 바닥도 벽과 비슷한 머스터드색의 카펫, 커튼은 벽난로 벽과 비슷한 버건디로 했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이 될 무렵 커튼을 연초록 도자기 색으로 해서 좀 더 차분한 느낌의 방이 되었지만 말이다.


벽난로가 있는 패밀리 룸은 덴(den)이라고 불리는 활동적인 공간이다. 미국의 집들은 거의 모두가 나무로 지어진다. 차고는 흙 위에 시멘트를 발라 만들어지고 집 안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다. 차고와 같은 레벨로 지어진 공간이 덴이므로 낮게 움푹 들어가게 된다. 북향이면서 집에서 유일한 시멘트 바닥이라 가장 추운 공간이 패밀리 룸이고 그래서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공간을 확장을 하여 창문을 북쪽 , 동쪽, 남쪽에 내었는데도 거실에 비하면 햇빛이 훨씬 짧게 든다.


아이들이 크고 몇 년 전에 카펫을 걷어내고 플로팅 플로어(floating floor)로 교체하였다. 기계공학적으로 만들어져 긁힘이 없고 단단하고 코크가 밑 대어져 약간의 쿠션이 있다. 회색이 가미된 대리석 문양으로 마스터 베드룸 욕실 바닥의 진짜 대리석에 비해 훨씬 실용적이다. 대리석은 겨울에 맨 발로 디디면 뼛속까지 차가운 냉기가 들며 물방울을 흡수해서 얼룩이 남는다. 인조 대리석 바닥은 관리가 쉽고 차갑지 않고 무엇보다 값이 저렴하다. 그 당시 아들 생일 선물로 우리 집에 반려견을 들였기에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 바닥 색깔에 맞추어 산 가죽 소파는 먼지 진드기 알레르기가 있는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푹신한 소파는 금속(metal)으로 뼈대를 이루어 웬만해서 부서지지 않고 벽난로와 더불어 남성적인 분위기의 공간이 되었다. 티브이가 있어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므로 대부분 시간을 거기서 보냈다. 새로 만들어진 공간이었으므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함께 영화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 남편이 보는 관심 없는 채널은 배경음악처럼 들리고 그 속에서 글을 읽었다.


리빙룸


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주방을 고친 것을 시작으로 다른 공간도 통일감 있게 한 번에 한 공간씩 바꾸어 나갔다. 마지막까지 카펫을 교체한 것 빼고 한 번도 손질을 안 했던 방이 피아노가 있는 리빙룸이다. 대개 리빙룸은 손님을 맞이하는 방으로 가장 깨끗하고 고급스럽게 방을 꾸민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도 유일하게 장난감을 가져올 수 없는 성인의 공간이었다. 고전적인 잔잔한 파스텔 꽃무늬의 커튼은 흰색 카펫과 흰색 소파와 잘 어울려 손댈 곳이 없었다.

커튼이 그렇게 세월이 흘렀음에도 색도 많이 바래지 않고 고급스러워서 교체하기가 망설여졌다. 처음에 밸런스(창문 위에 장식한 커튼)만 치우고 길게 내려진 부분(drape)을 흰색 리넨 커튼과 함께 써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흰색 리넨 커튼과 같이 걸어 놓으니 색이 칙칙해 둘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할 수없이 꽃무늬 커튼을 내리고 두 개의 리넨 커튼 패널을 더 주문해야 했다. 꽃무늬라서 보헤미안 스타일 데코에 맞으리란 생각이 착각이었다.


창문의 커튼을 바꾸지 않고 새로운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문이 인테리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정말 크다. 왜냐면 바닥과 벽면 다음으로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고심한 것 중 하나가 창문을 어떻게 어떤 스타일로 할 것인가 였다. 리투아니아에서 핸드 메이드의 리넨 커튼이 거의 3주가 걸려 도착했다. 부드럽고 가볍고 빛을 투과하는 릴랙스 한 리넨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핸드 메이드 쿠션과 러그를 매치하여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언젠가 누군가를 위한 공간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젠 나의 공간이 되었다. 더 이상 미래의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릇도 제일 예쁘고 마음에 드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제일 맘에 드는 공간을 내가 차지한다. 음식도 맛있는 것은 나부터 먹는다.


집을 가족의 성장에 맞추어 고쳐 나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마침이 없는 계속되는 프로젝트이다. 가족을 위해 특히 자식을 위해 양보하는 엄마나 아빠의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 생겨 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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