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빼빼로가 아니라 꽈배기

비틀림의 미학: 우연과 우회로의 합작(collaboration)

by 젊은 느티나무

어렸을 때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동생들과 방을 같이 써야 했기에 나 만의 방에 나만의 책상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방을 멋지게 꾸미면 무엇보다 내게 책상이 생기면 공부를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셋방에서 살던 부모님 께서 집을 보러 다니는 상태라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한 동안 행복했다. 그러나 이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몇 년 후에 이층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지만 인테리어 다자이너가 되고 싶은 꿈은 서서히 잊혀 갔다. 그 당시에 내가 접 할 수 있는 디자인은 조그만 포스트잇처럼 떨어지는 수첩이었는데 코너에 아주 작은 디자인이 들어간 그림이 예쁘게 박혀 있어 수집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특파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무작정 다른 문화와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영문과에 들어갔다. 아뿔싸! 영국 미국문학과 영어학에 관한 것이었다. 실용 영어를 배울 거라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어영부영 졸업을 하였다.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학원 강사를 하기 시작했다. 진정 영어 문법에 대한 공부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성문 기본 영어”, 성문 종합 영어”. “서당 집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읽는다”라고 하는데 10년을 넘게 가끔은 투잡으로 영어 과외까지 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겠는가. 지금은 많이 무뎌졌지만 현지 미국인보다 영 작문을 어법에 맞게 한다면 믿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 왔을 때 영어 대화와 작문의 격차는 현저하였고 많이 따라잡았다고 해도 여전히 영어로 쓰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더 이상은 발전이 없다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 운명과도 같은 책을 만나게 된다. 이름하여 피터 드러커의 “지식인의 사회”. 정보 사회가 도래하는데 주역이 지식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컴퓨터의 도래로 해석했다. 그래서 영어도 언어, 컴퓨터 언어도 영어로 된 것이니 간단히 익히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대덕 연구 단지 ETRI에서 24주 소프트웨어 개발자 과정에 등록했다. 내 생전 그렇게 좌절감을 맛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를 계기로 잠시 벤처 기업에서 일하다 온라인 데이트로 남편을 만나 2000년도에 미국에 오게 되었다.


육아와 동시에 미진 했던 컴퓨터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커뮤니티 칼리지에 웹 개발자 과정에 등록했다. 처음엔 한 학기에 두 과목을 하다 육아와 병행해서 몸에 무리가 와서 좀 쉬다가 다시 한 학기에 한 과목으로 바꾸었다. 정작 배우고 싶은 과목은 한 두 개인데 필 수 과목을 수강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걸렸다. 중간에 그만둘까 하다가 아니지 시작했으니 끝을 내야지 하면서 결국은 7년 만에 자격증(certificate)을 취득했다. 그 뒤에 잠시 GM에서 계약직으로 한국 GM 직원들을 지원하는 help desk에서 일하다가 전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정작 그렇게 힘들여 배운 프로그램 기술은 써먹은 적이 없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계획한 대로 잘 되지 않으면서 우연( 컴퓨터를 배운 것)이 필연(배우자를 만나게 된 것)으로 연결된다.


Facebook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중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일기 형식으로 꾸준히 올려 소통하였다. 카톡 밴드에서 “4남매”로 동생들과 부족했던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는데 밴드가 해체된 뒤 엄청 아쉬움이 남았다. “카카오가 돈 되는 일에만 신경 쓰고 초심을 잃었다”라고 악담을 하였다. “브런치”로 나가기 위한 과정 이란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2년 전 프랑스 여행을 계획할 때 처음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정성 들여 쓰인 내용과 현장의 사진이 곁들여져 도움을 많이 받았다.


팬데믹으로 집을 리모델링하기로 했을 때 어릴 적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기를 원했던 생각을 끄집어내어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때 간절히 원했던 것이기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브런치 북 “ 소프트 미니멀 인테리어”도 카톡에서 동생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로 거기에 살을 붙여 일주일 만에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그중에서 “ 히피 vs 보해미언”은 제목까지 똑같고 이미 작가로 활동하는 남동생이 대단하다며 누나도 한번 미국 생활을 나누어 보라고 했다. 그렇치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앱에 저장했던 4남매의 글을 모두 날렸다. 그것이 브런치에 작가 신청한 가장 큰 이유이다. 이참에 작가가 되어 글을 올리면 내 글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는 생각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나도 이제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에서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 브런치 작가가 되어 마치 특파원이 된 것처럼 글을 써 나르고 인테리어에 대해 뭔가를 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고여있던 물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으로 지치는 줄 모르고 쓰고 있다.

더는 어릴 적 꿈에 대한 열망이 없기에 나는 내 꿈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이제는 개인적인 꿈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 만들기”와 같은 폭이 넓은 꿈을 가지고 있다. 다 같이 공존하고 다 같이 커 나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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