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치기와 시 부모님과 시간 보내기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바뀐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내가 이사 가지 않고 집을 수리하면서 눌러 살기로 마음을 굳힌 것과 시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겨울 코로나가 한 창일 때 모르고 지나쳤지만 시 아버님이 코로나 항체가 있는 것으로 나와 코로나가 아주 가까이 와 있었음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남편이 부모님 건강 걱정이 늘었는지 주말만 되면 시댁에 가자고 졸라서 “유커”라는 카드놀이하면서 2~3 시간 같이 시간 보내곤 한다. 물론 매주 하는 것은 아니고 한 달에 두 번 정도? 왜냐면 시부모님이 캠핑카를 사서 항상 캠핑 다니시느라 집에 계실 세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좋은 며느리는 못되었다. 늦게 결혼해서 애들 키우느라 바빴고 시어머니가 도와주셨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홀로 친정 엄마의 도움 없이 애들 키우는 것이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뒤늦은 육아에 여러 가지로 힘도 부칠뿐더러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느라 마음의 여유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 핑계 이면 핑계일 수 있다. 시 부모님은 너무나 좋은 신 분들이라 불평 한마디 없으셨다. 그 많은 명절 (크리스마스, 부활절, 어머니날, 아버지 날, 생일, 추수감사절)을 한 번도 우리 집에서 챙긴 적이 없고 늘 시부모 집에서 그리고 최근 한 5 년 정도는 막내 시누이 집에서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고 음식이 낯설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내 마음에서 썩 내켜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은 한국에 홀로 계신 엄마에게 하지 못하는 효도를 시부모님께 해드릴 수 없는 마음의 사보타주( 무의식의 거부)가 가장 큰 이유였다.
세월이 흘러 가까이 있는 막내 시누이 두 아들이 결혼하여 손자를 보고 우리 시부모는 증조 부모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컸다고 가족 모임에 안 가려고 하고 시부모님의 관심은 자연히 어린 증손자에게로 쏠린다. 그러다가 팬데믹으로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자 자연히 분리가 되어 시누이 가족과는 당분간 뜸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까이 계시는 시부모님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실 그날이 그날이라 변화를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려 보면 가족사에 엄청난 변화들이 이루어졌고 이미 세대 간의 전달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요즘 뭐랄까 2020년은 새로운 10년을 여는 첫해로 결혼 20주년이면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집 고치기 프로젝트가 모든 면을 돌아보고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책임을 맡고 명절도 내가 챙기고 요리도 직접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어 저러한 한국 요리를 다시 시도하기 시작했다. 닭볶음탕, 김치 담그기 등. 그럴 때마다 거동 불편한 엄마가 마음에 걸린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해보고 여러 방법들을 시도하거나 찾아보되 내가 도울 수 없는 상황으로 우울해하지는 말자라고 다짐한다.
왜냐면 우리 모두 그 길을 따라가고 있으며 그 끝은 누구나 외롭고 쓸쓸할 것이니까 말이다.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도리는 다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계는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올바르게 또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그 외의 것은 부수적인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