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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 느티나무 Feb 11. 2021

미국 학교 무료 급식 먹는 아이들

생각보다 많아요

2018년 여름, 나는 엄마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딸과 한국에 있었다. 그 해 여름은 내가 살았던  한국의 여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웠다. 통영에서는 바닷바람이 있어 덜했는데 순천만을 구경하기 위해 공원에 당도했을 때는 한증막 같은 더위에 엄마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딸을 데리고 서울 구경을 시켜준다고 명동에 도착해서 '난타'를 구경하고 이대에 다니는 조카가 학교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이대를 거쳐  '홍대 거리'를 걸을 때는 비 오듯 땀이 쏟아졌다. 언제 다시 방문하게 될지 기약이 없는 딸을 위해 일정을 무를 수는 없었기에 그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항에 가려고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받고 보니 내가 신청해 둔 커뮤니티 학교의 런치 레이디 job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나온 중학교가 우리 서브에서 제일 가까이 위치해서 그곳을 선택하였다. 그때 딸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얼굴 마주칠 일은 없었다. (고등학교 런치 룸에서 일하는 것을 딸이 적극 반대해서 갈 생각이 없었다.) 코로나 이전에 커뮤니티에는 초등학교 6개 중학교 3개 고등학교 1개의 런치 룸에서 약 65명가량이 일을 했다. 내가 일하는 중학교에서는 breakfast 레이디가 한 명, lunch 레이디가 7명이다. 처음에 키친 매니저가 요리를 하기 쉽게 음식을 준비시키는 일(prep)과 음식을 서브(Serving)하는 일을 맡았다.  나중에는 음료를 준비시키고 fresh fruit을 먹기 좋게 컷 하는 일과 캐셔 일도 함께 하였다. 멜론을 깎는 걸 보더니 다들 놀랜다. 사과를 깎아먹는 것에 익숙한 칼질이 사과를 씻어서 껍질째 먹는 미국 사람들에게 신기하게 보인 것이다.( fine motor skill- 쇠 젓가락질이 한국 사람들의 머리를  좋게 만들었다는 말에 동감한다) 캐셔 일을 하다 보면 누가 공짜 점심을 먹는지 알게 된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자동차 산업이 구조 조정을 당하면서 도시를 떠난 사람들도 많았고 남은 사람들조차도 경기가 나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다. 아무래도 저소득층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공짜 점심 먹는 학생 수가 증가한 후에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였을 것으로 가정해보면 1/4 정도 될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이 크라이슬러 헤드쿼터가 있는 곳으로 GM 본사가 있는 다운타운에서 약 45분 거리이다. 전형적인 중산층 카운티에서 그 정도의 숫자는 상당히 많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커뮤니티는 2000년도만 해도 거의 백인 중산층이 거주하고 아시안이나 흑인은 학교에 한 두 명 정도로 아주 드물었다. 2008년도 지나면서 좀 떨어진 폰티악( 지엠 자동차 이름)이란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가 있는데, 우리 커뮤니티 학교에서 흑인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도시를 떠난 사람들이 많아서 학생수가 일시적으로 줄어서 인 것 같았다. 이를 두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대 놓고 반대하거나 불평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런치를 먹는 인원이 약 250명가량 되는데 각 라인 별 6~7명 정도가 흑인 학생으로 이전보다는 늘었지만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공짜 점심을 먹는 아이들 특히 흑인 학생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well behaved) 예절 바르다. 미국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 봉사하러 갈 때마다 느낀 거지만 학교가 절간처럼 조용하다. 따로 교무실이 없고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마치 도서관처럼 교실이 신성시되므로 떠들지 않는 것 같다.


점심 먹으러 오는 아이 중에 정말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었는데 흑인 혼혈처럼 보이는 귀여운 여자 아이였다. 공짜 점심을 먹는데 그 아이 한 데서 어떤 그늘이나 결핍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아이의 전체에서 느껴지는 해맑고 밝은 느낌은 도대체 이 엄마가 어떻게 자녀를 당당하게 키웠을까 궁금하기까지 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구김살 없이 키울 수 있는 엄마는 진정한 고수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2월 초에 학교가 다시 오픈을 했는데 아침 9:35분에 시작을 해서 2시 반에 끝나고 하루 걸러 한 번씩 학교에 간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 접촉을 꺼려해서 커뮤니티 학교(초, 중, 고)에서 hot lunch를 없앴기 때문에 런치 룸에서 일하는 인력이 1/3로 줄었다. 중학교를 떠나 이 번에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Head start (5세 이하)와 Early start(3세 이하)의 아이들을 정부에서 보조하는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들에게 무료 점심을 제공한다. 약 50명가량의 점심을 요리하고 스낵,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준비하는데 3시간 45분을 일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비건이 한 명, 베지테리언이 한 명이 있고 early start는 음식의 양을 반으로 해야 해서 전에 일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집에서 메뉴를 보면서 다음날 행할 동선을 머릿속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문제가 안 되는 데 아직 일이 익숙지 않아서 정말 물 한 모금 들이킬 시간이 없다.


적어도 학령기의 학생들은 굶지 않도록 국가에서 보조해 주고 관심 갖고 지켜보는 것에서 선진국의 진면목이 느껴진다!

image: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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