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젊은 느티나무 Apr 24. 2021

나를 설레게 한 한마디

"나는 우리 집이 너무 좋아"

"좋아하는 영화도 볼 수 있고"

"오빠랑 비디오 게임도 할 수 있고"

"이렇게 맛있는 요구르트도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오늘 아침 딸이 등교하기 전에 학교 가기 싫다면서 내게 해 준 말이다.


이런 순간은 흔치가 않은데 너무 설레게 하는 말이라서 장을 본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과일과 요구르트가 떨어질까 무서워 일을 마치고 식품가게에 들렀다. 3시간 반 동안 일하는 내내 그 말이 머리에 떠오르고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어렸을 때 시금치를 먹이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음식 사이에 슬쩍 숨기고 하였지만 결국 먹이지 못하셨다고 하셨다.

입이 참 짧은 사람! 반찬 타박이 전혀 없는 장점도 있으나 먹는 것이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어 어떨 때는 무식? 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 시절에는 미국에서 보통 대학교에 들어가면 집을 나가서 생활하며 성인으로 커나간다. 보통의 대학생들이 그러하듯이 남편도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녔고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학비까지 전부 충당했고 부모님은 룸엔 보드(기숙사비)와 교재비 정도만 주셨다고 하였다. 햄버거, 감자 칩, 프렌치프라이, 콜라, 피자가 최고로 좋아하는 메뉴인데 젊었을 때 굳어진 입맛이기 때문인 것 같다.


딸도 아빠를 닮아서,

입이 짧아 아들에게 쉽게 먹인 한국 음식, 특히 밥을 안 좋아해 먹일 것이 궁해서 참으로 애를 먹었다.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밥을 안 좋아하면 무얼 좋아해?" 피자를 먹고 남은 크러스트를 주니 잘 받아먹는 것이 아닌가. 처음으로 아기가 받아먹은 고형 식이 피자 크러스트였다.


"요리도 누가 맛있게 먹어 주어야 할 마음이 나는 것이지..."

처음에는 요리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하다가 나중에는 한 가지(한국 음식)로 만 장만하였다.

"먹기 싫으면 관두고" 하는 생각을 하다가 엄마가 "먹게 시리 해줘라" 하신 말이 은근히 신경이 쓰여  주로 좋아하는 일품요리로 했다.


엿 파는 것은 엿장수 맘대로 하듯이 주방에서 요리는 주방장 먹고 싶은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줄기차게 야채를 집어넣어 요리를 해도 다 골라 놓는데 이상한 것은 '비빔밥'에 들어간 야채는 골라 놓지 않는다. 삶아서 참기름에 무친 시금치를 잘 만 먹는다.

시어머니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해낸 것이다.


6살에 피겨 스케이트를 시작하여 전담 코치를 두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8살 때였다. 마치 올림픽에라도 나갈 것처럼 철저하게 일주일에 3번씩 연습을 하다가 10살 때부터는 주 5일을 스케이트 클럽의 링크에서 연습을 했다. 딸이 너무 좋아했기에 시작하였고 계속할 수 있었다.(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스케이트를 타려면 학교가 끝나는 즉시 픽업을 해서 링크로 데려가야 하는데 학교에서 급식을 먹던가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맥도널드의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가는 길에 드라이 스루를 통해 받아서 차 안에서 먹는다. (방과 후 아이들 학원 보내라 라이드 해 보신 분들은 무슨 얘기인지 이해하실 줄...)

클럽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연습이 끝나고 출출해지면 샐러드나 좋아하는 치즈 프라이를 먹기도 하고, '파네라 브레드'의 동그란 바게트 빵의 속을 파내어 담은 브로콜리 크림치즈 수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밥에 물 말아 김치와 먹는 것, 감잣국, 미역국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집밥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에 굳어진 입맛이 집밥에 맛있을 리가 없었다. 크림수프를 하도 좋아해서 한 번 시도를 했는데, 수프가 아니라 바게트에 들어있는 수프를 원하는 것이라서 " 노노, 다시는 시도하려 하지 마, 엄마"라고 했다.


전에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이 있어 즐겨보던 한국 유투버가 청소를 끝내고 조촐하게 차려진 간식을 먹는데,

꿀에 쟁여놓은 아몬드를 과일(블루베리, 딸기)과 함께 요구르트에 넣어 먹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몬드가 몸에 좋고 비타민 E가 풍부해 피부 미용에도 좋다는 것을 알았어도 딱딱해서 간식으로 잘 먹어지지가 않았다. 호두는 부드러워 시리얼에 넣어서 먹으면 그만이다. 두 가지를 사 오면 항상 아몬드가 남아돌던 차에 그 방송을 보고 꿀을 넣고 쟁여 놓았다가 요구르트에 넣어 주니 딸이 그렇게 좋아한다.


워낙 단것과 신 것을 좋아하는 딸이 달달한 요구르트에 시큼한 과일과 달착지근한 꿀이 곁들여져 풍부한 단맛을 내는데 아몬드의 씹는 맛까지!!!

너무 맛있다면서 등교하기 전에 먹더니 학교 갔다 와서도 먹는다. 얼마나 길게 갈지 모르지만,

"Immaculous(흠잡을 데 없어)"를 외칠 때마다 내 기분은 업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품과 인종 차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