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야기
소설 『고양이의 참배(猫の刻参り)』(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25)에 대한 서평이라기보다, 그냥 독후감입니다. 가급적 이미 읽은 독자분들과 의견을 공유한다는 느낌에 가깝고,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1. 이 소설의 주인공은 중견 상인의 둘째 아들로, 가업을 상속하기보다는 화가가 되기를 꿈꾸는 인물이다. 그는 그림을 배우면서 부업으로 괴담회의 '청자(聞き役)'를 하고 있다.
2. 보통 에도 시대에 행해진 괴담회는 여러 명의 입회자들이 서로 괴담을 주고받는 식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괴담회는 '흑백의 방'이라는 공간에서 1명의 화자가 1명의 청자에게 1:1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식이다. 이때 청자는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는 치되 밖으로 발설은 하지 못한다. 이 괴담회는 '이야기의 종착역'인 것이다. 주인공은 청자로서 들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취미를 갖고 있었는데, 그림 스승은 이야기의 인상을 단 1장의 간판 형식으로 그려오는 숙제를 주었다.
3. 이 소설은 주인공 신변의 변화에 대한 큰 이야기가 진행되고, 중간중간 진행되는 괴담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액자식 구성으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괴담 소설'에서 흔히 활용하는 구성 방식이다. 참고로 '고양이의 참배'는 그 첫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다.
4. 나는 과거 여러 개의 짧은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실려 있는 괴담집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각 화자의 이야기 한 편의 분량이 상당히 길어서, 총 이야기의 개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대신 큰 액자에 해당하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 작은 액자가 여러 개 있거나, 혹은 여러 겹 중첩된 액자식 구조를 띠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머릿속이 다소 복잡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5. 왜 작가는 이런 식으로 소설을 구성했을까? 추측건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괴담 내용을 전달한다기보다, '이야기'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세월을 거치며 사람과 사람을 거치며 이야기는 생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것이 최종적으로 청자(주인공)에게 도달할 때, 자연스럽게 중첩된 액자식 구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야기라는 생명체'의 탄생과 죽음을 따라가는 느낌. 혹은 '이야기의 이야기'랄까.
6. 보통 괴담물은 '나도 어디서 들은 이야기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다.'라는 점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도 '괴담회에서 청자가 화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화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청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아니고, 형체 없는 독자가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를 엿듣는 듯한 느낌에 가깝다. 작중에는 흑백의 방에 화자·청자 두 사람이 들어가 괴담회를 하지만, 실제로는 독자까지 세 사람이 있는 것이다.
7. 또 다른 괴담의 클리셰 중 하나가 인물과 배경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되 가명을 씀으로써 그 내용이 사실임을 강조하는 것인데(핍진성), 본 소설에 나오는 괴담 역시 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8. 작가는 장소나 인물, 사물의 시각적 이미지를 그림을 그리듯 강렬하고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읽다 보면 에도 시대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9. 갠적으로 마무리는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그늘 속에 숨길 필요가 있나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