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all lost, but...
올리베르 라셰 감독의 영화 〈시라트〉(2025). 개봉 당시 이미 화제작이었고, 저도 김혜리 기자의 팟캐스트를 통해 소개를 받아서 꼭 한 번 봐야지, 생각했습니다. 설 연휴에 식구들과 〈왕사남〉과 〈휴민트〉 중 하나를 보려다가 실패하고, 결국 이 영화 1편을 보았습니다. 혼자 볼 때는 뭔가 시네필스러운 영화를 보는 습관이라. 영화는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관에서 관람했습니다.
김혜리 기자는 상영관 음량이 과하게 커서 좀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영전당 시네마테크는 '얌전히' 조절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우퍼가 강조되어 있는 상영관이 아니다 보니, 저는 음량이라도 좀 더 키우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막에서 순회 레이브 파티(rave odyssey)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21세기의 히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루이스)은 중년 남성으로, 낡은 미니밴에 어린 아들(에스테반)과 그리고 강아지(피파)를 데리고 레이브 파티를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본인이 레이브 파티를 즐기러 온 게 아니고, 연락이 두절된 레이버(raver) 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주인공 일행은 어느 레이버 무리를 따라 다음 파티 장소로 이동하는데, 바깥세상에 큰 전쟁이 일어납니다. 레이버 무리와 주인공 가족은 여정에서 서로 간의 인간미를 확인하며 하나의 운명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그들은 점점 길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여정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것으로 점점 바뀌어 나갑니다.
전쟁터 속에서 열리는 레이브 파티는, 특정 계층의 문화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탐닉하는 쾌락(요새 도파민으로 대변되는 것)을 은유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난을 잠시 잊기 위해, 그리고 다음 여정을 이어나가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죠. 여기 등장하는 레이버들의 행동은 얼핏 자기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남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쾌락 추구가 아닐는지요.
주인공 일행은 여정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구성원을 잃는 상황을 잇달아 겪습니다. 이 사고들은 일행이 예상치 못한 시점에 터지기 때문에, 일행은 이별을 슬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급박한 전쟁 상황은, 일행이 잠깐 서서 슬퍼할 틈을 주지 않아요. 일행은 슬픔을 삭이며 다소 멍한 채로 여정을 이어나갑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이별을 하고, 슬퍼할 틈이 없고, 멍한 채로 여정을 이어나가는 모든 상황은 관객들도 마찬가지로 다가옵니다. 관객들도 심리적으로 이 일행의 여정에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감을 심하게 하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 사고의 복선은 주어지지만, 상황을 예측할 어떠한 단서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연한 상황의 반복이라니, 극의 핍진성이 없는 걸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야 말로 핍진성이 없는 것이겠지요. 인간은 역사를 통해 자기가 처한 상황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끝없이 노력해 왔고,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최종의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 눈앞의 난관을 모면하는 상황을 반복하는 게 우리의 인생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게 이 영화의 '플롯'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들었던 감정을 여러 개의 짧은 글로 메모해 둔 게 있습니다. 당시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었던 같은데, 일주일 남짓 시간이 지나고 이 글을 써보니, 감정이 숙성되고 정화된 게 느껴집니다. 그때는 이 영화가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지금은 희망 밖에 느껴지지 않아요.
오늘도 세계의 어느 곳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런 고난이 언제까지고 남의 일일까요? 또 일견 평온한 일상을 반복되는 이 나라에서도, 누군가는 마음속에 지옥도가 펼쳐져 있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역경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 인생입니다.
주인공이 어느 순간 깨달은 것처럼, 우리는 생각을 비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똑같은 상황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홀로 버티지 말고, 주변 사람과 도움의 손을 주고받는다면, 우리는 누구든 동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 개체들의 '투쟁이 아니라 공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희망입니다.
'투쟁이 아니라 공생'이라는 말을 꺼낸 김에, 개인적으로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화와 책을 하나씩 추천드리겠습니다.
댄 트랙턴버그 감독, 〈프레데터: 죽음의 땅〉(2025)
멀린 셀드레이크 저,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아날로그(글담),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