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사단은 아버님의 혼잣말로 시작됐다. 하루에 몇 마디 안 하시는 양반이 뜬금없이 ”내가 죽기 전에 엄마 산소에 갔다 오고 죽어야지.. “라고 말씀하신 것. 여기서 ’엄마‘란 남편의 외할머니, 즉 아버님의 장모님이다. 외삼촌들은 오히려 어머니라 부르는데 사위인 당신이 엄마, 엄마 하며 더 따르고 친했다던 장모님. 내겐 시외할머님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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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 있는 산소에 나도 세 번 정도 갔었나.. 풍수지리는 모르지만 참 양지바르고 고요하며 마음이 편해지는 좋은 곳에 부부가 같이 계셔서 부러웠다. (나의 할머니, 외할머니는 아빠 엄마의 강력한 의지로 모두 따로 납골하지 않고 화장터 봉안함에 뿌려드렸다. ) 그러나 뇌수술을 6번 하시고 머리뼈도 닫지 못한, 혼자 힘으로 걷지 못하는 81세 노인을 모시고 제천까지? 남편은 이 얘길 전해듣자마자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고 말도 꺼내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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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가 일백 퍼센트 K-장남 재질 아니랄까 봐, 스트레스로 불면증과 이명에 시달리면서도 렌터카를 알아보고 이모삼촌들과 날짜를 맞춰보더라는. 불량며느리지만 때때로 맏며느리 코스프레를 시전 하는 나까지 하루 휴가를 냈다. 솔직히 갈까 말까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근무지 특성상 주말 근무가 메인인데 토요일 휴가를 내기가 좀 그런데다, 어머님이 아들들 대동하고 동생들과 가는데 혹시 내가 따라가는 걸 불편해하지 않으실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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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 딸램에게 물어봤더니, ”할머니가 왜 불편해? 시어머니랑 가는 엄마가 불편하지. “ 이러더라는. ”음.. 나는 안 불편한데?“ 그러자 ”엄마가 눈치가 없어서 그래“라며. 아니 눈치 하면 난데.. 지금껏 눈치로 살아온 인생인데..? 여하튼 아무도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았지만 핑계김에 휴가도 내고 콧바람도 쐴 겸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비 오는 어느 5월의 토요일, 9인승 승합차 스타리온(스타렉스 새 버전이라네?)에 어머님의 형제자매 - 불같은 성격이 꼭 닮은 - 안동김씨 4인방과 아버님을 모시고 남편의 ’효도 여행‘이 시작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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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이야기’ 가 계속됩니다. 많관부!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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