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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바람 Jul 05. 2024

 4. 나의 시외할머니 길봉순

산소는 비교적 잘 정돈돼 있었다. 큰외삼촌이 돌아가시고 실질적으로 산소를 돌보고 있는건 선산 바로 아랫 마을에 살고 있는 육촌 아재라고 했다. 구순은 안되셨다 하니 시부모님과 비슷한 연배거나 조금 위일 것이다. 그 분의 아버님도 윗쪽에 모셔져 있다. 매일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선산에 와서 잡풀을 정리하고, 남은 공간에 일궈 놓은 농작물을 돌보는 것이 일과라 하셨다.


어머님은 온 김에 큰집 어르신들 묘소까지 갔다 오신다고 아들들과 동생들을 데리고 난데없는 옆산 등산길에 오르셨다. 무릎도 안 좋으신데 말린다고 들을 양반도 아니고.. 포비의 표정이 또 안좋아졌지만 군말없이 따라갔다. 나와 아버님 둘만 남겨진 상태. 산소 앞에 감자밭이 있어 밭을 망치며 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어쩔수 없이 봉분이 보이는 나무 그늘 밑에 휠체어를 파킹(?) 해 둔 터였다. 아버님은 작은 소리로 ”예전엔 이게(감자밭)이 없었는데...“하며 연신 눈을 훔치셨다.

휠체어가 통과할 수 없는 감자밭

포비가 밤 열두 시에 들어와도 밥 먹으라며 밥을 차려주셨다는 분. 딸 가진 죄인이라고 딸네 와서 안사돈 밥상까지 삼시세끼 차려주셨다는 분. 손칼국수며 두부찌개며 콩가루쑥국이며 메밀배추전이며 내가 좋아하는 어머님 음식은 모두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님으로 전해온 것들이다.

외할머님은 포비랑 결혼하기 바로 전 해 위암인가로 돌아가셨다. 병원에 갔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전신에 암이 퍼져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 지경이 되도록, 고통을 숨기고 병원에 안 가셨다고. 살아계실 때 뵈었더라면, 길봉순 여사님은 한규종 여사님(내 외증조 할머니)이 우리 엄마를 예뻐했듯이 나도 예뻐해주셨을까?

비가 내리다 그치고 볕이 뜨거웠다. 하늘은 파랗고 사방이 초록이었다. 새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외손주며느리 왔습니다. 그제서야 제대로 된 인사를 드릴 정신이 났지만, 이미 저쪽에서 시끌시끌 안동김씨 사남매가 성묘를 마치고 되돌아오고 있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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