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계속되는 멀미 구토로 기진맥진 상태가 되셨다. 20분에 한번씩 하던 구토가 10분에 한 번 꼴로 심해졌다. 심지어 물만 드셔도 바로 구토를.. 난 정말 응급실에 가야 하는거 아닌가 불안했지만 섣불리 뭐라 얘기를 꺼낼 군번은 아니었다. 그러나 확실히 바로 집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삼촌은 점심 식사 후 근처에 사는 또다른 육촌 아재네 집에 들렀다 가자고 제안했다. 거기서 아버님을 좀 눕혀서 쉬게 하고 겸사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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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친척이라고는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이렇게 단체로 무턱대고 찾아가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숨도 안쉬고 좌회전 우회전 직진 돌아서 그래 거기! 하는 삼촌의 길안내 끝에 도착했다. 포비가 어른들을 먼저 내려드리고 주차 후 시동을 끄기도 전에 이미 삼촌은 ENFP의 화신답게 그댁 앞 정자에서 육촌아재와 막걸리를 따고계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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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 아재와 막걸리를 드시는 동안 안동김씨 자매들은 숙모의 텃밭에서 각종 작물들을 수확했다. 깻잎과 상추, 열무.. 스타리아의 트렁크는 이미 삼자매가 시장 본 결과물로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아재가 집 앞 오갈피 나무까지 도끼질해 한 포대를 담아주고 나서야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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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어봤자 가져가는 자식들이 없다며 아재는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한탄했다. 그러나 아재의 손자는 올핸가 작년에 수능 만점을 받고 서울대를 들어갔다 한다. 삼촌을 만나서 인사도 하기 전에 먼저 하신 말씀이다. ㅎㅎㅎ나는 이 모든 상황이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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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가 젊을 적, 먹고살기 힘들어 최후의 수단으로 해외에 나가서 일을 해야만 할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근데 그 당시만해도 해외에 나가려면 보증이 있어야 했는데, 돈 보증도 아니고 사람 보증도 아니고 ’집 보증‘ 이 있었어야 했다고. 모두 외면하거나 형편이 되지 않아 안 해준 그 ’집 보증‘을 해준게 바로 우리 어머님.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오늘의 방문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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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한가득 피어있는 레몬색 꽃이 너무 예뻐 검색을 해보았는데 달맞이꽃이었다. 내가 너무 예쁘다고 하니 이모님이 그래? 가져갈래? 하며 일어나셨다. 너무나 당황해서 아니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달맞이꽃은 숙모의 꽃밭에서 뿌리채 뽑혀 세 개의 검정 비닐봉투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물론 달맞이꽃은 흔했고 그 집 마당을 비롯 집 주변 전체를 레몬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지만, 난 어쩐지 그 옛날 어머님이 나를 길들이기 위해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생각나 무서워졌다. 내가 보는 앞에서 돌쟁이 손녀에게 밀크커피를 티스푼으로 한 방울 먹인다던가,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데 네가 감히 뭐라 할 수 있어? 하던 무언의 제스쳐. 주부 9단 아니 정치 9단의 어머님을, 그래서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때론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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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숱하게 보아 왔던 풍경이라했다.
터질듯한 트렁크의 문을 간신히 우겨 닫고, 기운을 차리신 아버님을 모시고 스타리아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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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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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부 : ’파국이다‘ 편 다음주 화요일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