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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바람 Jul 09. 2024

5. 달맞이꽃


아버님은 계속되는 멀미 구토로 기진맥진 상태가 되셨다. 20분에 한번씩 하던 구토가 10분에 한 번 꼴로 심해졌다. 심지어 물만 드셔도 바로 구토를.. 난 정말 응급실에 가야 하는거 아닌가 불안했지만 섣불리 뭐라 얘기를 꺼낼 군번은 아니었다. 그러나 확실히 바로 집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삼촌은 점심 식사 후 근처에 사는 또다른 육촌 아재네 집에 들렀다 가자고 제안했다. 거기서 아버님을 좀 눕혀서 쉬게 하고 겸사겸사.

아무리 친척이라고는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이렇게 단체로 무턱대고 찾아가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숨도 안쉬고 좌회전 우회전 직진 돌아서 그래 거기! 하는 삼촌의 길안내 끝에 도착했다. 포비가 어른들을 먼저 내려드리고 주차 후 시동을 끄기도 전에 이미 삼촌은 ENFP의 화신답게 그댁 앞 정자에서 육촌아재와 막걸리를 따고계셨..

삼촌이 아재와 막걸리를 드시는 동안 안동김씨 자매들은 숙모의 텃밭에서 각종 작물들을 수확했다. 깻잎과 상추, 열무.. 스타리아의 트렁크는 이미 삼자매가 시장 본 결과물로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아재가 집 앞 오갈피 나무까지 도끼질해 한 포대를 담아주고 나서야 끝이 났다.

농사를 지어봤자 가져가는 자식들이 없다며 아재는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한탄했다. 그러나 아재의 손자는 올핸가 작년에 수능 만점을 받고 서울대를 들어갔다 한다. 삼촌을 만나서 인사도 하기 전에 먼저 하신 말씀이다. ㅎㅎㅎ나는 이 모든 상황이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아재가 젊을 적, 먹고살기 힘들어 최후의 수단으로 해외에 나가서 일을 해야만 할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근데 그 당시만해도 해외에 나가려면 보증이 있어야 했는데, 돈 보증도 아니고 사람 보증도 아니고 ’집 보증‘ 이 있었어야 했다고. 모두 외면하거나 형편이 되지 않아 안 해준 그 ’집 보증‘을 해준게 바로 우리 어머님.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오늘의 방문이 이해가 되었다.

문제의 달맞이꽃

마당에 한가득 피어있는 레몬색 꽃이 너무 예뻐 검색을 해보았는데 달맞이꽃이었다. 내가 너무 예쁘다고 하니 이모님이 그래? 가져갈래? 하며 일어나셨다. 너무나 당황해서 아니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달맞이꽃은 숙모의 꽃밭에서 뿌리채 뽑혀 세 개의 검정 비닐봉투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예쁘다고 입밖으로 소리내 말할 수 없었다

물론 달맞이꽃은 흔했고 그 집 마당을 비롯 집 주변 전체를 레몬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지만, 난 어쩐지 그 옛날 어머님이 나를 길들이기 위해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생각나 무서워졌다. 내가 보는 앞에서 돌쟁이 손녀에게 밀크커피를 티스푼으로 한 방울 먹인다던가,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데 네가 감히 뭐라 할 수 있어? 하던 무언의 제스쳐. 주부 9단 아니 정치 9단의 어머님을, 그래서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때론 미워했다.

남편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숱하게 보아 왔던 풍경이라했다.

터질듯한 트렁크의 문을 간신히 우겨 닫고, 기운을 차리신 아버님을 모시고 스타리아는 출발했다.

to be continue...

* 6부 : ’파국이다‘ 편 다음주 화요일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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