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전화를 드렸지만 어머님은 냉랭했다. 그 와중에 아버님의 생신이 다가왔고... 남편의 불면증과 이명은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심해졌다. 난 차라리 한 육개월 정도 연락을 끊고 지내 보자고 제안했다. 시댁에 살 때 나는 때로 괴로웠다. 하지만 분가하고 나서야, 그들을 진심으로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었다.
생신도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전화 한 통 하고 말라고 말이다. 내가 현명하지 못한 걸까? 하지만 무서웠다.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한 분. 동생들과 며느리가 보는 앞에서 아들이 본인에게 언성을 높여 감히 대들었다... 그 화를 어떻게 풀어드려야 할 지 감이 안왔다.
여차저차 아버님의 생신날이 되었다. 꾸역꾸역 시댁 근처 식당을 예약하고, 딸램과 조카까지 온 가족이 모였다. 웬일로 남편은 소주를 시켰다. 다음날 출근 안 해도 되는 토요일 밤이었고, 삼촌도 오셨기 때문에 같이 대작할 사람이 필요해서란 핑계였다.
이미 약주가 과하신 삼촌이 여느때처럼 내 이름을 부르신다.
”@@아!“
”네“
”아이고 @@아!“
”네~~ 삼촌“
”네 시어머니는 강한 사람이다“
”......“
”잘해드려라“
”네..“
순간 울컥했다. 그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었다. 물론 그 뒤로 ”잘해드려라“를 백 번 말씀하셨지만 난 그때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라고 모두 대답했다. 어머님은 질색팔색하며 쓸데없는 소리 그만좀 하라며 삼촌을 구박했지만 싫지는 않은 눈치셨다.
식사 후 시댁에 어른들을 모셔다 드리고 가려는데 어머님이 잠깐 기다려 보라며 나를 불러세웠다. 지나가다 예뻐서 손거울 다섯 개를 사셨다며 그 중 두 개는 손녀것과 내것이라 하셨다. 나머지 세 개는 당신과 딸, 외손녀 몫.
이루 말 할 수 없이 기뻤다. 십 칠년 전, 대출 없이 아파트를 사주셨을 때보다, 할부 없이 자동차를 사주셨을 때보다 더.
이 모든 소동은 끝났으되, 동시에 새롭게 시작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