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빛을 경험한 목자들처럼 기쁜소식을 전하자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목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모두가 집에서 쉬는 시간에 밖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나타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해주었고, 그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그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게 되었고, 자신들이 천사를 통해 듣게 된 것들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놀라워 했지만,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 속에 새겨두었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모두가 조용한 바로 그 시간, 베들레헴에서의 예수님의 탄생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목자들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왜 천사는 목자들에게 나타났을까요? 사실 메시야의 탄생을 가장 극적으로 알리는 것은 유력자들에게 알리는 것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질문 보다 먼저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천사는 왜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렸는가. 목자들이 예수님이 태어난 것을 알고 베들레헴에 직접 찾아가 경배한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적으로 그리 큰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예수님은 태어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성장해 나갈텐데, 왜 굳이 천사는 예수님과 어떠한 연고도 없는 목수들을 불러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고 그들로 경배하게 했을까요? 매우 가벼운 질문 같지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아직 아기로 태어나 일을 시작하기도 전, 하나님은 천사들을 시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깨달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먼저 경배하도록 만든 것은 경배를 받으실 예수님과 그를 인정하고 찬양 해야 할 우리의 직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 누구도 이 소식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이 사실에 대해 준비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방식대로 인간의 입을 통해 예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일을 끊이지 않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동시에 본질적인 일은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고 그것을 높이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입니다. 오늘 이 성탄절을 맞아 내 계획과 생각을 앞세워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천사 앞에 두려움으로 그 소식을 귀기울였던 목자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 겸손함이 결국 베들레헴의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한 것 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한 겸손함이 예수님과 성령님을 경험하는 놀라운 길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왜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났는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왜 목자들일까, 하는 생각을하며 낮은 자들에게 먼저 찾아가는 하나님, 혹은, 매우 유치하지만, 예수님이 나중에 동종 직업으로 일을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의 기준과 다르게 택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고전 1:27)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에서 제가 붙들고 싶은 더 직접적인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그 밤, 가장 가까이 있었고,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사람들이 목자들이었습니다. 유력자들은 멀리 있었고, 바쁜 일정과 체면과 절차가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천사가 전한다 하더라도 바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들판에 있었고, 천사들의 말을 듣자마자 베들레헴까지 곧장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혹자는 그냥 주변에 바로 예수님께 갈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천사가 소식을 전했다는 것이 특별함이 없는, 다소 맥빠진 이야기 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복음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가장 먼저 울립니다. 즉, 하늘의 기쁜 소식은 유력한 누구, 멀리 사는 누구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 소식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천사를 통해 가장 가까운 자들을 불러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가장 가까운 자들에게 전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복음을 전할 때 전략을 만들어 냅니다. 누구에게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누구에게 가장 복음이 가장 잘 먹힐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예전에 음식을 소개하고 먹는 컨텐츠를 보여주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탕수육을 가지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연예인은 “부먹”, 즉 탕수육 소스를 부어먹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반면, 또 어떤 연예인은 “찍먹”, 즉 탕수육 소스를 찍어먹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한 개그맨이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부먹, 찍먹 고민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먹어라.” 저는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식, 저런 방식 고민할 시간에 내 주변에 있는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는 것이 가장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의 밤에 하나님이 목자들을 부르신 것 처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실 뿐 아니라, 그러한 기쁜 소식을 전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요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지 못했지만, 그 어두운 밤 하늘은 열렸고, 베들레헴 땅은 흔들렸으며, 메시야의 탄생을 목격한 자들의 감격과 찬양으로 가득한 소동의 밤이자, 빛으로 가득한 밤 이었습니다. 이 처럼 기쁨의 소식이 이어지는 성탄절을 맞이하며,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둠에 묻힌 밤 처럼 보일 지라도, 우리에게는 성령의 감동과 말씀의 역사가 불길처럼 일어나는 빛으로 가득한 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