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에세이 연습 과제 4 - 사랑했던 사람을 소환하고 달라진 내 마음 표현
누군가와의 이별이 의외로 삶의 용기인 때가 있었다. 그와 나는 3년이란 긴 시간 이어졌던 장거리 연애의 끝을 이별로 장식했다. 사무치게 짙은 그리움이 나를 덮칠 때면 온통 그리운 이의 얼굴로 머릿속이 가득 차며 온몸의 감각과 기능이 마비됐다. 나는 매일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감정의 충만함을 표현하는 행위 예술가가 되곤 했다.
애타는 그리움이 그의 부재를 채울 때면, 나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그의 얼굴이 서렸다. 그 정도로 감정이 농익을 즘엔 현실 감각이 사라졌다. 백일몽이 정신의 상당 부분을 잠식함에 따라 닿지 않을 그를 향해 손을 뻗는 몽상에 빠지곤 했다.
과유불급.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진한 그리움은 되려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상호적이지만 상호적이지 않았던 연락과 만남이 바로 우리 사랑의 모습이었던 까닭이다. 닿아야 했지만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사랑이라 여긴 모든 것을 무상하게 하였다. 그와의 추억이 하룻밤 꿈처럼 스러지던 날, 나는 그에게 고마웠다는 문자를 보냈다. ‘뭐가?’라는 뻔한 그의 물음이 꽁꽁 언 강물처럼 차가웠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등을 보인 채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넜다.
공허한 마음속에 스산함이 밀려들었다. 그와 이별하던 순간도 이리 스산했던가... 우울함인지 미련인지 알 수 없는 야릇하고 모호한 감정이 치밀었다. 한결같던 육체가 변해버린 마음을 비웃었다. 이별의 단계를 거친 지금이나 서로의 부재 속에 근근이 사랑을 이어가던 과거가 딱히 다르지 않은 탓이었다.
사경을 해매 듯 오락가락하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점차 잦아들 때쯤 나의 마음이 자립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일기 쓰기였다. 병적으로 깊어지던 우울의 바닥을 치고, 감정이 희석된 언어가 떠올랐다. 그다음, 이별의 잔흔으로 남은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두 다리와 양팔이 빠르게 교차할수록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헉헉, 하고 내 쉬는 더운 숨결을 따라 사무치던 외로움이 기화했다. 꼿꼿한 허리와 매끈한 배, 부들부들한 피부와 건강은 덤이었다. 한계치까지 달릴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걸음걸이가 당당해졌다. 그동안 나의 밤을 괴롭히던 술과 카페인을 끊었다. 오롯하고 온전해진 밤과 새벽 사이에 머물며 독서를 하고 클래식을 들었다.
이제 나에게 그는 오랜만에 찾은 식당 출입문에 걸린 ‘임시휴무’ 팻말 정도가 됐다. 먹고 싶은 메뉴를 못 먹을때 정도의 아쉬움. 딱 그만큼만 건조해진 아쉬움의 빈자리를 새로운 메뉴가 채웠다. 처음 맛보는 음식이 내 입에 딱 맞을 때의 만족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쩌면 마음에게도 학습 능력이 있을지 모른다. 한 사람과의 끝이 곧 또 다른 사람과의 새로운 시작임을 머지않아 깨닫는 힘. 그 힘은 다시 사랑하고 상처받을 용기의 원천이 된다. 나는 오늘도 지난한 감정의 사이클에 기꺼이 몸을 던진 채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이별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