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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Sep 15. 2020

내가 나를 마주할 때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


 눈빛을 마주하자 검은 물감 한 방울이 톡 떨어졌다. 물감 한 방울은 양이 적어 금방 희석되었다. 하지만 검은 물감은 한 방울로 끝나지 않아 물이 점차 짙어지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숨이 가쁘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괜찮다고 다독였다. 여기까진 퍼지지 않았어, 하며 옅은 부분을 찾아 헤맸다. - 없었다. 평소에 편했던 어둠이 나를 삼키는 어둠이 되었다. 그래도 기댈 형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어두워져 보이지 않았다. 도망쳤다.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치다니,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진다. 속이 텅 비어버린 껍데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껍데기를 놓아주자. 내 속은 너덜너덜해져 떠나버린 지 오래다. 놓고 싶어 놓은 게 아니다. 간신히  잡고 있는 그 끄트머리를, 그 손을 누군가 내리쳐 놓아 버린 것이다. 누구든 알아줬으면 좋겠다.


.


.


.


아. 


아프고 힘들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나란히 서서 같이 외치는 줄 알았는데, 마주 보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속에서 올라왔다. 짐승이 울듯, 그렇게 속을 긁어 소리를 냈다. 검은 물이 흘러 속을 비웠다. 비워진 만큼 물이 차올랐다. 옅어졌다. 앞이 보였다.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아니,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 보였다.


말을 걸어왔다.


이제 괜찮지?


대답한다.


이제야 알았어.

그만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실은 절박하게 살고 싶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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