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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Dec 16. 2020

나는 저녁을 열심히 산다.

내일도 살고 싶어서

나는 일곱 시,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저녁을 열심히 산다.

내일도 살고 싶어서.


매일 저녁 열 시,

내 공간의 침묵 끝에 어색하지 않게

따라오는 생각들이 온순한 모양새로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주광색의 조명을

바라보고 있자면, 생각들이 나를 투욱-

투욱- 건드리고 지나간다. 그러면 나는

공명하는 다리처럼, 조금씩 생각이

던져놓은 파동이 커지는 걸 느낀다.


파동을 흘려보내면 되는데,

나는 그걸 붙잡는다.


그리고 그 손에 다른 것이

함께 붙잡힌다.


마치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큰 신호 전에 작은 신호가 있었는지,

작은 신호가 큰 신호를 불러온 건지.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함께 온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마냥.


내가 붙잡은 건지, 붙잡힌 건지

그 누구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나는 내가 저녁을 열심히 살아 보람찼다며 허겁지겁 나의 기특함을 꺼내놓는다. 무서운 괴물을 마주쳤을 때 어떤 무기를 써야 할지 몰라, 일단 모두 꺼내는 초보자처럼.


내 맞은편의 괴물은 보잘것없는 것들을

두 손 벌벌 떨며 즐비하게 꺼내놓은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숨을 죽인다.

비참하다.

남들은 다 쉬운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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